1. 하나님의 눈에 들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던 다윗!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눈에 든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자신했던 다윗은 자신의 신복이었던 요압에게 전쟁터를 맡깁니다. 그리고 여유롭게 자신의 성에 거하며 긴 낮잠을 잔 후 왕궁의 옥상을 거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한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눈이 있으니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본 것에 머물지 않고 안목의 정욕을 육체의 정욕에 채우려 한 걸음 더 달려들었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삼하11:3)
육체의 정욕을 불태우기 위해 무섭게 달려든 다윗의 모습니다. 한번 발동이 걸린 육체의 정욕! 과연 제어가 될까?...... 그러나 그 시각 자신의 신복들은 목숨을 걸고 암몬과 대치중에 있었습니다. 알아본바 그 여인의 이름은 밧세바! 그의 남편은 우리아. 우리아는 자신의 신복인 요압의 신실한 부하였으니 곧 자신의 부하요 자신의 백성이었습니다.
2. 이제 더 나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알았으니 여기에서 멈춰야 함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대로 직진합니다…….제어되지 않는 육체의 정욕은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로 가고 있었는데 정작 다윗은 알고 있었을까?......자신의 신실한 부하요 백성인 우리아의 아내와의 동침 그리고 임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윗은 이제 죄를 가리기 위한 더 큰 죄를 향해 거침없이 치닫습니다.
사무엘하 11장 14-15절 말씀 보겠습니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씨 바꿔 치기가 뜻대로 안되자 간음에 더하여 살인교사 까지!!! ‘어찌 일이 이렇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야? 그것이 바로 죄의 힘이요 정체일세!’ 안목의 시험이 육체의 정욕으로, 육체의 정욕이 간음으로 간음이 살인으로…..이제 이 다윗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누가 무엇으로 이 다윗을 이 깊은 죄악에서 구원하겠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그 첫걸음은 무엇이겠습니까?
3. ‘은혜와 긍휼을 따라 나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씻어주심으로 내 죄악이 눈과 같이 희어지길 소원합니다. 더러워진 이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어두워진 이 심령을 정직하게 하소서. 주께서 구원의 은혜를 기꺼이 베풀어 주심으로 종이 회복된 자가 되게 하소서. 주는 나를 이 깊은 사망의 죄악에서 끌어올리실 구원이시오니 나를 피 흘린 죄에서 구원하소서 나의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마음을 찢는 회개! 그러하기에 종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께 회개하오니 용서하소서!!!’……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가슴을 찢는 회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불의와 범죄로부터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입술의 회개가 아니라 가슴을 찢는 회개입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삶을 고치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다윗은 그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음 당 할 수밖에 없었으나 가슴을 찢는 회개, 삶을 돌이키는 회개로 영원히 사는 복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4. 계시록 본문 21-23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심은 대로 거둡니다. 행한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기보다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보다 은혜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콩만 심었는데 온갖 곡물을 풍성히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마음의 태도입니다. 회개할 시간과 기회가 충분히 있음에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에 대한 심판과 진노는 자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예상 밖의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많던 재산이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그 자녀들에게 고난이 닥치기도 합니다.
5.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회개하면 죽음이 생명이 됩니다. 회개하면 어두움이 빛으로 바뀝니다. 회개와 구원, 회개와 하나님의 나라는 같이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사랑과 은혜의 역사입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의 모든 불의와 불법과 믿음 없음과 크고 작은 죄악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이켜 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씻김 받고 하나님으로 회복되기를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전26:18절)
6. 이제 본문 24-2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그렇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도 적당히 믿어야지. 지금은 AI인공지능시대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기도만 해! 주일 그렇게 지킨다고 누가 알아주나.’ 세속의 광풍이 아무리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명품, 명품 해도 주안에서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모두가 더 많이 있어야 해! 더 모아야 해! 라고 해도 있는 바를 만족히 여기며 감사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둔 바 그 믿음의 마음을 지켜내는 하나님의 보배들입니다. 하나님의 보배!!!
7. 교활한 이세벨의 교훈에 넘어지지 않았던 성도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또한 세속의 유혹에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예수님의 기쁨은 우리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은 바로 여러분 입니다.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그 꼿꼿한 믿음! 그 견고한 소망! 그 넘치는 사랑! 그것을 마지막까지 굳게 붙잡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기는 자 되고 사명을 완수하는 자 되어 하나님의 상급…..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즉, 사단의 앞잡이 노릇 하는 사람들, 세상의 힘을 무기삼고 사는 사람들을 이기는 능력을 받으며……새벽 별! 즉, 생명의 주님과 늘 친밀함을 누리며 주님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은 절대적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