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지난번 본문 1-2절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겉모양은 성도인데 생명의 능력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죽은 바 된 성도라 그러하기에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그리하여 성도답게 살아라 소경이여 눈을 뜨라 그리하여 볼 것을 보아라 어리석은 자여 깨달으라 그리하여 진리의 길로 나아가라 지혜로운 자 같으나 어리석은 자 되지 말고 오히려 어리석은 자 같으나 세상을 관통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라 유명한 자 같으나 꼴불견인 사람 되지 말고 차라리 무명한 자 같으나 빛나는 사람 되어라 산 자 같은 나 썩은 시체냄새 풍기는 사람 되지 말고 차라리 죽은 자 같으나 생명의 열매로 충만을 이룬 사람 되어라……’
그리스도의 음성은 우리에게 이렇게 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2. 지난번에 이어서 이제 본문 3절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 즉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어서 희망 둘 가치가 없는 존재라면 그냥 내버리시면 될 텐데........... 행위가 너무 가증하여 역겨우시면 그냥 그렇게 살다가 망하도록 버려두시면 될 텐데........ 진리로 아무리 가르쳐도 각자의 신을 세우고 살아 들을 가능성이 없다면 포기하시면 될 텐데……
천지의 주재이신 그 영광의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쉬워 다시금 그 거룩한 손을 내미시는지 말입니다. 항거하고 반항하며 배반을 일삼는 흙덩어리 사람이 무엇이라고, 사데교회가 무엇이라고, 성도들이 무엇이라고 그 빛난 생명의 손을 내미셔서 은혜를 누릴 기회를 여전히 주시는지 말입니다. 다시 보듬으시는 나의 하나님!!!
3. 예레미야 애가 3장 22-23절에서 증언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로 덮으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반복된 실수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로 덮어가십니다. 때로는 때리기도 하시지만 다시 싸매십니다. 때로는 심판하시지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왜요? 돌아온 탕자처럼 회복된 아들이 되라고 이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기업을 이을 성숙한 아들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눅15:17-18절)
4.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우리가 어떻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랑으로 오셨는지? 나 같은 죄인을 왜 구속하셨는지…..나를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어 가고 싶으신지…..깨닫고 회개하여 그 첫사랑, 첫 마음, 처음 서원을 드렸던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버지를 깨닫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자!….그에게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임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나아가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그렇게 살다가 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머물러 있는 그 자리는 죄의 자리요 죽음의 자리입니다.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15:15-16절)/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양식과 세상의 양식, 먹어도 먹어도 늘 배고픈 존재와 마른 빵으로도 언제나 부요한 존재!!!
5. 아버지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데 유산을 달라하는 불한당 같은 아들. 아들 됨의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없는 후레자식. 아버지의 값진 재산을 세상 향락에 탕진하는 배은망덕한 놈……그러나 이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여전합니다.
사랑과 긍휼!!! 참 좋으신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기다립니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립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기다립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돌아올까 하고 길목으로 나아갑니다. 아들의 발소리가 들릴까 귀를 밝히 열어놓고 새벽까지 기다립니다. 아들아! 돌아오라 돌아오기만 하면 돌아오기만 하면……..기다리는 아버지를 향하며 아들이 나아갑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눅15:18-20절) (❊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6.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내리시는 복은 제일 좋은 옷, 손에 가락지, 새신 이었습니다. 변할 수 없는 회복된 아들의 지위입니다. 또한 회개하고 돌이켜 거듭난 자의 삶을 사는 성도에게.... 육체의 영광 아니요 세상의 욕심대로 아니요.... 임할 복은 흰옷과 생명책에 기록된 빛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들이 누릴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신 성도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세주로 영접하던 날을 기억합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던 그날은 어떠했습니까? 또한 성령의 은사를 처음 경험할 때의 결심은 어떠했습니까? ‘이 생명도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세상의 모든 풍조가 다 변하여도 또한 우리의 삶의 자리와 형편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입니다. 세상을 따르느라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이 식으면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촛대를 옮기시고 또한 육체의 유익을 따르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느라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도를 저버리면 그에게는 재앙이 임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제일 좋은 옷과 손에 가락지 새신 그리고 흰옷과 생명책 안에 기록된 빛나는 이름….하나님아버지께서 자비와 긍휼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참 아들에게 물려줄 영원한 나라를 들고 기다리십니다. 오늘 우리는 죽은 것으로부터 돌이켜 아버지께로 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