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창]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창]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24: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창]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란 땅을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심 곧 말씀 따라 살아온 삶이 어느덧 “나이가 많아 늙었고” 라는 지점까지 이르게 되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약한 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 20장: 치명적 약점과 실수: 네게브 지역의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 ❋그러나 그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진보되고 진보되어서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두말없이 순종할 만큼 위대함으로 성장했다. (성장하지 않는 믿음, 진보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을 뿐 아니라 땅의 삶에서도 크나큰 번성의 복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큰 믿음 되어서 이 땅을 지나는 동안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범사의 복을 열매 맺는 여러분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 그런 그에게 오늘 본문은 “나이가 많아 늙었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의미인가? 육체의 장막을 벗을 때, 죽을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 나이가 많아 늙었고- 라고 기록한 것은 아브라함이 사라처럼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 놓아야할 중요한 일이 있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생여정을 마칠 때가 가까운 아브라함이 해결하고자 한 일은 과연 무엇일까?
본문3-4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그렇다. 이삭의 신부 찾기, 이삭의 혼인문제의 해결이다. 그러나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고 혼인을 맺게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삭의 혼인은 하나님의 언약과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 창세기12장 7절의 말씀과 22장17절의 말씀을 보자.
❋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한 아내 찾기요 혼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건설을 위한 믿음의 계보세우기이다. 그러니 어찌해야겠는가? 철저히 영적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야 한다. 그래서 일평생 신실하게 충성해온 늙은 종에게 이 대사를 맡기며 맹세를 시킨다. ❋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왜 가나안 땅의 여자가 아닌가? 예쁜 여자들도 많고 가문 좋은 여자들도 많을 텐데- (❋그곳에는 근친상간(레 18:6-18, 24-30). 간음(레18:20) 우상숭배(레18:21) 동성연애(레18:22, 20:13) 수간(레 18:23, 22:19) 등 부도덕한 사회였기 때문)
- 물과 기름이 하나 될 수 없듯이 성도는 불신자들과 하나 될 수 없다. 특별히 혼인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수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믿음을 잃어간다. 믿음이 파선 당함: 청년들, 학생들, 어머니들 많이 기도해야함)
❋ [고후]6: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6: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6: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하나님의 성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성도들이여! 삶의 모든 일에 복음으로 순결하기를 축복한다. 그리하여 따로 선자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은혜로 충만하기를 축복한다.
❋ 아브라함은 왜 늙은 종에게 이삭의 신붓감을 찾는 대사를 맡겼을까? 그 당시에는 연애결혼이 없었을까?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다 연애결혼을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의 결혼도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든지 이삭 스스로가 제 눈의 짝을 찾아 결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이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의 눈을 넘어설 수 없다. 누가 이삭의 신붓감을 찾는가? 아브라함자신도 그의 늙은 종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다.
136여년 여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여정을 사는 동안 아브라함은 그것을 경험했다. ‘내가 행한 것 같아도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고 성취되며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언제나 정확하고 옳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열매 맺는다.
그래서 본문7절에서 아브라함은 선언한다.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아멘 아멘’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하루하루 그 진리를 깨닫고 살지 않는가?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내가 일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신다.’ (가끔 어떤 사람들 보며 겉으로는 ‘하나님께서 하셨다. 도우셨다. 은혜 주셨다.’ 말은 하는데 속 중심이 ‘이거 내가 한 거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아니다. 주님의 참 제자 되는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본문: [창]24: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24: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창]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24: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아브라함의 사명을 받은 그 늙은 종이 염려한다.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가운데 이삭의 신부를 예비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신랑 될 사람의 얼굴도 모른 채 일가친척도 없는 가나안까지 어찌 가며, 게다가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적어도 20여일의 거리인800km 정도 되는데 어찌 간다는 말입니까? 라고 한다면 어찌해야합니까? 그러면 주인의 아들을 하란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살게 해야겠습니까?’ 라고 묻는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무엇이라 대답을 하는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내 아들은 결코 하란 땅에서 살 수 없다 한다.’ 그 이유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본문7절에서 분명하게 밝힌다.
[창]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 그렇다. 언약의 자손이 어찌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신 하란 땅으로 되돌아가 살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의 심령 안에는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만이 살아서 움직인다.
❋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주만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 죄 씻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 죄 씻었네.
❋ 나의 갈길이 사납고 위험하나 항상 예수의 도우심 믿고 가네.
❋ [출]16: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
출애굽했다면 뒤돌아보지 말아야한다. 출애굽했다면 그 땅에서 먹던 고기와 마늘과 부추보다 마른 빵을 먹고서라도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영광스러운 행진을 기뻐해야 한다. 그가 참 인간이다. - 예수사람 되었다면 세상 즐거움 아니라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이 영광의 행진을 기뻐해야 한다. 세상영광 얻으려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잃는다. -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한 이유가 무엇인가? 광야에서 굶어죽을 것 같다는 이유 때문 아닌가? - 실제로 광야는 그 어떤 가능성도 기대할 수없는 곳이다. 그 사막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가축을 기를 수 있겠는가?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나 핵심!!! 이스라엘백성은 지금 누구와 더불어 그 광야 길을 통과하고 있는가? -비록 오늘 내가 탄 인생의 배가 크고 작은 풍랑으로 인해 흔들거리지만 누가 함께 승선해 계시는가?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있다는 것 아닌가? 주님 함께 계시기에 광야가 변해서 보리떡이 되고, 사막이 변해서 메추라기가 쏟아지는 곳이 된다. 출애굽시키셨다는 것, 그리스도의 제자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것은 그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름 받아 이미 나선 성도들이 세상영광을 얻겠다고 어찌 세상에 거주할 수 있겠는가? (툭하면 세상으로 내려가는 사람 많다.)
6절: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8절: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 설령 손해 볼지라도, 설령 고난을 당하더라도 오직 언약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 마침내 언약을 결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