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1-2절의 말씀 보시겠습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인생의 진리와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직접 가르치시고 전하실 때 그곳에 모여 그 놀라운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하나님의 메시아께서 그 자신의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진리!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또한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실 때 주님의 음성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주님의 얼굴로부터 비춰나는 광채를 보던 회중들은 얼마나 감동이었을까요? 여러분도 주님의 음성을 직접들으며 주님의 빛난 광채 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겠지요? 그러나 이 놀라운 행복의 자리, 이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이 역사하는 복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버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 사람들이 먼저 그 행복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생명의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는데 왜 그들은 그 자리를 거부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 시비까지 거는 무식한 자들이 되었을까?
2.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라면 눈이 더 크게 열려서 하나님의 메시아를 금새 알아보았어야 했는데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자신들의 눈이 얼마나 가려져있는지, 자신들의 영이 얼마나 어두운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말입니다. 일반회중들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따르고 있는데 하나님에 대하여, 율법에대하여, 제사에 대하여 전문가라 자칭하던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몰라보고 대적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5절 보시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대한 탐욕이, 육체를 즐겁게 하고자 하는 방탕이 그 자신들의 눈을 가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신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진리이신 주님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목회자들, 성도들의 눈은 열려있을까?
오늘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과연 주님을 구세주로 알아 볼 수 있을까? 거짓말도 그렇게 잘하는데, 모략중상 비방도 그렇게 잘하는데, 고급 진 것 명품 엄청 좋아하는데, 명예와 권력 있는 자리 엄청 좋아하는데, 박사가운입고 강단에 오르기 좋아하는데 과연 주님을 알아볼 눈이 열려있을까?
3. 이사야서 55장 1절 보시겠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렇습니다. 오직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 예수께 나아가면 목마름은 시원함으로 바뀌고 배고픔은 풍요로움으로 바뀝니다. 절망은 소망이 되고 슬픔은 찬송이 됩니다. 오직 주님께 나아가면 인생의 모든 것을 생명으로 성취하게 됩니다. 예수님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꼐서 스스로를 증명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태복음28장18절)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 권세와 권능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누가복음10장19절)
그러하기에 오직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나에게 비밀스런 능력 있다.’는 목사나 ‘나는 이 방면에 전문가다.’ 하는 설교자나 ‘나는 직통 계시를 받는 예언자다.’ 하는 사람이나 박사가운 입고 강단에 오르는 자들은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우리의 삶을 생명의 복으로 성취할 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은 바로 그분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매 순간 감사드리며 주신 권능을 믿음으로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여기에서 조금 곁길로 나아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되었음에도 삶과 인격에 변화가 없는 사람들. 주여 주여 하면서도 세상사람보다 더 세상적이거나 더 못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권위에 자신을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옛 성품 곧 육체로 살고 싶어하는 모든 육체의 권세, 자기권리를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으면 나의 옛사람은 사라집니다. 대신 예수님의 권세와 권위가 통치하는 사람인 새 사람이 그를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이어야겠습니까? 옛 사람 곧 육체의 권리를 주장하며 죽음을 열매 맺는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 곧 예수님의 권위에 자신의 모든 삶을 맡김으로 생명의 복을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권위로 둘림 받은 여러분의 삶! 세상의 어떤 세력이 감히 넘보겠습니까?
5. 잠깐 더 생각해볼까요? 일년 52주동안 단 한번도 주일을 빠지지 않고 전심을 다하여 예배드리는 사람과 이런 이유 저런 이유을 달아 주일을 범하는 사람. 과연 누구에게서 하늘의 권세와 복음의 능력이 더욱 힘있게 역사하겠습니까? 또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는 성전에서 매일 정성을 다하여 기도의 제단을 쌓는 사람과 기도의 의미조차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 과연 누구에게서 세상을 이길 권세와 세상을 통치할 능력이 더 크게 역사하겠습니까? 누가 더 하늘과 땅의 복으로 충만함을 입겠습니까? 예배는 예배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배자에게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이 기름 부어지는 시간이 됩니다.
기도의 시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세상을 이기고 통치하며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힘과 능력을 덧입는 시간이 됩니다. 순전한 예배자들의 얼굴에서, 깊은 기도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하나님께서 부으신 영의 광채를 못 보았습니까? 그래서 예배하는 삶이어야 하고 그래서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6.이제 본문3-4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도 몰라보고 시비 거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직격탄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데 그 권위가 어디로부터 임한 것인가? 하고 주님께서 되물으시는 것입니다. 아뿔싸!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주님의 이 질문에 대하여 진퇴양난이 되었습니다. 만일 요한의 세례 베푸는 것이 하늘로부터 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자들이 되어 돌에 맞아 죽을 판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하여 메시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고 오히려 그를 귀신들렸다고 함으로 신성모독을 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의 권위는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즉 요한은 거짓선지자라고 대답하면 그 역시 돌에 맞을 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백성들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 예언자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종교인들! 당시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을까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한 세상영광을 더 누리기 위하여 진리를 거짓으로 매도하고 하늘을 땅이라고 우기며 의인을 악인이라 모함하고 제거하려던 그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났으니까 말입니다. 아닌가? 너무 타락하고 너무 세속화되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수치스러움도 모르는 짐승이 되었을까?
그렇습니다. 육체의 욕심에 매이고 세상 탐욕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귀영화의 정도와 관계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의롭고 당당한 예수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7. 이제 본문 5-7절의 말씀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진리를 보았으면 진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거짓은 거짓되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진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이익과 세상에 대한 욕심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장로들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되었습니다. 거짓말은 식은죽이 되었고 심지어 살인교사는 숨결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붙들리면, 사람이 부귀영화에 눈이 멀면, 사람이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멸망하는 짐승이 되고야 맙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은 육체의 모든 권리와 권세가 십자가로 제거된 새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세상이익과 영광, 그 어떤 고난과 위협 앞에서도 예는 예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분명하게 대답하는 예수권위에 입힌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8.본문 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세상사람들 악인에게는 예수님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가 다 가려져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그 영광스러운 권위와 능력 그리고 신비함의 은혜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안개처럼 사라질 이 세상의 자랑과 영광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가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오직 말씀대로 살아내려는 충성의 삶을 살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자신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로부터 일해오신 손이 그를 힘주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시며 높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살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늘 소망으로 가득하고 내일에 대한 기다림과 설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어디로 인도하실까?’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권세로 사방을 진쳐주셔서 기적 같은 일을 열매 맺어 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자기권세와 자기권리 그리고 육체의 모든 힘이 다 제거된 예수사람이 분명합니까? 저는 이제 다시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예수권위에 둘러 진친바 된 삶이되시기를 그리고 하나님자녀 된 자의 권세를 풍성히 결실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