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치즈와 한 어머니의 사랑
1.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사랑은 참으로 위대하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간사랑은 가슴 시리고 아픈 사랑입니다. 왜 하나님사랑은 위대하고 놀라울 뿐 아니라 가슴 시리고 아픈 사랑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인간을 찾으시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가운데로 오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인간의 죄와 허물을 친히 자신의 몸에 지시고 십자가나무위에서의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우리가 감히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인간은 조그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고 떠는 존재입니다. 만일 당장 내일아침에 경찰서나 법원에 갈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밤새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이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몸에 어딘가 계속해서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갈 일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역시도 ‘어떤 병일까? 혹시 죽게 되는 병은 아닐까?’ 하고 근심하며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가셔야 할 길,저주의 나무에 못박힐 것을 아시면서도 베들레헴과 갈릴리로부터 사마리아와 온 유대 땅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과연 무엇이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까지 나아가게 했을까? 말입니다.
2. 그렇습니다. 다름아닌 하나님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위한 사랑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17절에서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과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땅으로 달려오신 예수님…그 길을 누가 막겠습니까? 우리는 진실로 예수님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까? 진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응답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확증하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성품과 삶의 변화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변화된 삶 즉 새 생명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까? 과연 새 생명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삶의 맛은 어떤 맛일까?
3. 본문 9-12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백성들, 그 중에서도 당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사랑하지 않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스라엘백성을 향하여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백성다움의 삶을 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포도원 즉 하나님의 친백성인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방신들을 따르며 이방인들의 풍속을 따라 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이사야서 5장 2절)
하나님께서 정성 들여 사랑하고 복을 베푸시며 놀라운 은혜를 주셨는데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스라엘의 삶은 하나님을 따르는 좋은 포도가 아닌 도무지 시어서 먹기힘든 세상을 따르는 들 포도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4. 그러나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보내시며 좋은 포도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하나님께서 다시 세 번째 나에게 기회를 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니’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애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거듭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나의 무지함이여, 나의 악함이여, 나의 교만함이여!!!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한 주인의 기다림은 무엇이겠습니까? 달콤하고 품질이 우수한 포도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극상품의 포도나무로 택정함을 입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기다림!!!시어서 도무지 먹을 수 없는 들포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움의 삶,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다움의 성품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의 삶이 극상품의 달콤한 포도와 같은 삶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인의 종을 때리고 모욕을 주고 내쫓아 버린 농부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도여러분! 진실로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나타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다는 진리를 발견했다면 우리의 삶과 성품은 극상품의 포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성품은 진실로 달콤합니까? 혹시 뾰족뾰족하지 않습니까? 주님 닮은 사랑의 성품과 삶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