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본문 46절을 보시겠습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시장에서 문안 받는 사람들!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오늘날로 말하면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넘어 사람들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기술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처럼 종교계에도 가득합니다.
예수님 이후 이천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도 인간의 영성은 타락한 상태 그대로여서 높고 높으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자신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수단 삼아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거짓목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장구한 세월이 지난다 하여도 인간의 탐욕추구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탐욕으로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한때 신학생들의 꿈과 비전이 중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되는 것이었겠습니까? ‘
나도 여의도교회 누구처럼, 소망교회 누구처럼, 사랑의 교회 누구처럼, 명성교회 누구처럼 될 꺼야!!!’ 그리 되면 높은 삶, 눈부신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예수 믿어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이요 부자 됨이 아니라 가난하여 짐이요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은 진실로 복음입니까? 진실로 복음이라면 그는 그 누구보다 빛난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2.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거침이 없으십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하나님의 길을 전혀 따르지 않는 서기관들을 멀리하라. 그들의 삶은 모양도 본받지 마라. 그들을 따르다가는 너희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삼가라 조심하라 삼가라 자신을 경계하라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나의 제자들인 너희는 그들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높임 받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낮아져라. 섬김 받으려 하지 말고 도리어 섬기라.’ 하십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경계를 삼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15장14절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향해 무어라 지적하십니까?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늘 우리자신을 예수님의 말씀 곧 빛이요 생명이신 말씀으로 경계를 삼을 뿐 아니라 말씀으로 삶의 목표를 삼고 나아갈 때 하늘까지 보는 눈이 되어 구원의 성취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구원의 길로 인도해 가는 영적길잡이가 됩니다.
저는 여기에 모인 모든 주님의 성도들이 더욱 예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빛난 눈이 되어 하늘세계까지 보아 그 힘과 능력과 소망으로 흔들림 없이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세상을 사는 영성은 무엇입니까? 세상영광입니까? 하늘영광입니까? 죄와 함께하는 잠깐의 즐거움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하는 영원한 기쁨입니까?
3.이제 우리는 본문47절의 말씀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삶이 곧 심판의 정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들…… 그들에게는 맡기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와 지식을 온전히 깨닫고 그대로 살아내며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다움의 길로 인도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흐르는 민족으로 하나님 앞에 세워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사명은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홀로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과부들의 재산까지도 넘보는 강도처럼 타락되었고…..물론 그것이 강탈한 것은 아니 었을지라도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희극배우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로 전락 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영적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사명자가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그에 대한 심판은 당연한 것입니다. 특별히 더욱 소중한 사명으로 맡기셨다면 더 큰 책임을 묻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더 많이 받았기에 징벌의 정도가 다름을 말씀합니다.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중한 것을 맡긴 사람에게는 중한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4.누가복음 12장 47-48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맡기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신 주님께서 우리각자에게 맡기신 삶의 책무는 무엇입니까? 그냥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잘되고 잘살고 잘 먹고 잘입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가 그렇게 여기고 산다면 아예 버림받은 사람들인 세상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다는 이 사실부터가 이미 많은 것, 특별한 것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과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살아갈 수가 없는 사명 속에 있는 것입니다.
5.교회의 직분보다 귀한 사명이 또 있을까? 성도라는 사명보다 앞선 사명이 또 있을까? 여러분! 세상에서의 사장이 귀합니까? 집사직분이 귀합니까? 신앙은 하나님과 나, 복음과 나, 일대 일로 만들고 엮어가는 길입니다. 참 신앙은 절대로 수많은 회중들 안에 묻힌 채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날마다 독대하는 자리로 나아갈 때 그 신앙은 빛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주 기도회에 나아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님들!!! 그들이 맡기신 사명을 소홀히 여기겠습니까? 하나님과 일대일 마주대하듯 살아가는 성도들 그들이 세상일을 하나님일보다 높이고 살겠습니까?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참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삶을 살아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열매 맺는 것이 인생인데 우리성도에게는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사명이 부여되어 있으니 어찌 살아내야겠습니까?
서기관은 직분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명이어야 했듯이 성도도 직분이나 이름이 아닙니다.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내야 할 사명입니다. 예수님 믿고 적어도 10년 지났으면 참 예수쟁이, 참 복음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한 심판이 아니라 놀라운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누구보다 빛난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6.우리 생명은 세상의 모든 금보다 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금보다 귀한 생명을 더욱 귀한 생명으로 결실해 갈 능력은 오직 예수그리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시작과 마침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진리를 아십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세계가 심판과 함께 우리각자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크고 작은 직분과 사명을 결코 외면하거나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단 한번뿐인 유일한 생명을 예수님으로 엮여져 살아냄으로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라가 바뀌어 ‘그들이 그 누구보다 보배로운 영광을 얻었더라. 그들이 그 누구보다 빛난 면류관을 받았더라.’ 로 바뀌는 복음승리의 역사가 오늘 우리모든 성도님들가운데 예외 없이 성취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