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 본문말씀은 본래 20절부터 시작되는 예루살렘에 임할 환란과 함께 묶여 있는 말씀인데 저는 25절부터 구분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을 시작하면서 다음의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견고한 자랑이요 마지막 자존심 같았던 예루살렘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 처절한 파괴와 극한 환난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나무뿌리는 물론이고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까지 먹으며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먹는 극한 상황에서 진정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였을까요? 그들은 의인을 돌로 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깔보며 욕보이던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달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탐욕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함에는 끝이 없습니다. 아니 사단이 인간을 끝없이 악하도록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회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님께서 다시오실 그날에는 어떤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회개할 줄 모른 채 하나님이 이미 떠나신 예루살렘처럼 주님이 없는 세상영광을 꿈꾸던 사람들은 과연 그 엄중한 심판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날! 그날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2.본문 25-26절에서 우리는 그날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무렵에 일어날 일들과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던 사람들이 보일 반응에 대하여 발견하게 됩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이 지구상에 일어날 일들이 얼마나 참혹하고 두려운지 사람들은 곤고하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곤고하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형편이나 처지가 딱하고 어렵다는 것인데 그것을 영적으로 풀면 마음 둘 곳이 없다. 전혀 소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세상사람들이 그토록 마음 두었던 재산, 그토록 기뻐했던 명예, 그토록 자랑했던 권력, 그토록 즐거워하던 세상의 소유물들은 아무 쓸모도 없게 됩니다.
곧 소망을 두었던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 등은 휴지조각만도 못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면 그 잔혹함은 설명할 길이 없잖습니까. 특별히 아마겟돈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전쟁의 날에 과연 세상의 그 무엇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 것 그 무엇으로 주님 재림의 날에 소용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날 주님 재림의 날에 세상을 의지하고 따르던 사단의 자녀들은 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님의 예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성도들의 믿음은 더욱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결실해가는 확증된 믿음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3.이제 본문 27-28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예수의 사람들인 성도의 눈과 마음과 삶은 구름 타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시간에 맞추어 져야 합니다. 주님의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 거라고 맡기신 일상의 일들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주님께서 오신다 하여도 오늘 우리는 더욱 부지런히 맡기신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깨어있는 사람이 세상일에 취하겠습니까? 깨어 있는 사람이 게으르겠습니까? 깨어있는 사람이 불충성하겠습니까? 깨어 있는 사람이 불순종하겠습니까? 깨어있는 하나님의 성도는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의 모든 고난과 고통과 눈물과 환난을 참아내는 것입니다. 혹 주님 때문에 고난당하시고 아프시고 눈물 흘리십니까?
영적인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그날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살아냈던 성도들은 하늘영광에 덮이는 영원한 잔치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오늘본문에서 좀 벗어난 이야기를 해도 좋을듯합니다. 주님께서는 왜 구름을 타고 오실까?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영광을 가리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영광은 너무나 커서 가리지 않고 보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름은 전능자의 이동수단을 나타냅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3절)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진실로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그 어떤 시련과 고난과 고통 심지어는 죽음에 넘겨지는 자리에 서게 될지라도 담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머리를 들라…….세상에 고개 숙이지 말고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의 날을 바라보며 견디고 또 다시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속량하심(redemption)곧 구원의 영광을 성취하시는 은혜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4.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인 우리들 앞에 남아있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이 이천 년이 훨씬 넘게 지났음에도 아직 재림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그래서 사람들은 재림약속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환경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땅은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습니다. 다 병들고 망가지고 온갖 충돌가운데 처해있습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조건…..인간이 살아가는 오늘의 이 땅을 누가 과연 정상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주님 말씀하신 그대로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의 현상이 이미 무르익었습니다. 때가 꽉 찬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깨어있는 성도가 아주 적다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의 길 따라 가는 좁은 길에 충성 헌신하는 성도가 아주 드물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깨어있는 자, 남겨진 자, 준비된 자가 되어 그날의 영광에 들어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저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사람들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베드로전서 5장1-4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우리가 먼저 이해하여야 할 것은 이 말씀가운데 나오는 장로는 오늘날의 목회자입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양을 치는 목회자는 자신의 이기심이나 의욕을 앞세워 성도들을 몰아가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하심의 길로만 인도해가야 합니다. 만일 목회자가 자신의 이기심이나 헛된 의욕을 앞세워 성도들을 몰아간다면 그것은 복음적인 목회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목회자는 이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를 위해서 목회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로 나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탐내고 여전히 세상기준으로 하나님의 양떼를 인도해 간다면 그 심판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목회자의 삶은 양 무리의 본이 될 만큼 온전히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낼 때 주님 다시 오시는 날 그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덮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6.그런데 우리가 좀더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 볼 것을 과연 베드로의 이 말씀이 목회자들에게만 적용될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를 향하여 누구라고 선언합니까?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지 않습니까?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기름부음을 입은 제사장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의 삶은 철저하게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즉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과연 그 운명의 날에 나는 어느 편에 세워질 것인가? 알곡일까? 쭉정이 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알곡의 편에 세워진다면 나에게 덮여질 면류관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 목자장이 나타나시는 날 주 예수그리스도의 강림의 날!!! 그 영원한 운명의 심판은 결코 두리뭉실하지 않고 엄격하고 예리하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신앙해야 그날에 합당할뿐 아니라 그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까?
하나님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로운 대강절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시간표는 어디에 맞추어져 있습니까? 주님 다시 오실 시간, 영광의 재림 시간에 우리의 시간표가 맞추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의 시간표!!! 그날에 목표가 세워진 사람의 삶!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보배와 영예를 주시고 하늘도 주시며 그 삶에 합당한 영광의 면류관도 주십니다.
우리들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