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1-7절 [마]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마]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마]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마]23: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마]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유대 권력의 심장부에 있어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그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전이 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제거하려 했다.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인 그들은 예수님까지 제거하려고 온갖 올무를 놓았지만 오히려 주님께 부끄러움을 당하기 일쑤였다. 거짓은 아무리 화려해도 진리 앞에 언제나 부끄러움을 당한다. - 우리는 지난번 마태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마]22: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을 던지시며 ‘너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사람의 사람으로 태어나 너희들의 부와명예와 권력을 더해주는 세상의 왕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또 다른 하나님이신 아도나이다. 다윗이 주님이라 부른 메시아께서 겨우 너희들의 육체의 욕구를 채워주는 존재라는 말이냐? 제발 영혼에 눈을 떠라. 너희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배만 채우려다가 영혼을 잃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인 내가 너희들의 눈앞에 있음에도 너희들은 맹인이어서 보질 못하는구나.’ - 라는 의미로 책망하셨다. 바리새인들은 한마디도 대답을 못하고 그날부터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본문 1절에서 기록한 것같이 제자들과 민중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실상에 대하여 밝히 드러내신다. 유대백성들은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높이 보며 부러워했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판단하실까?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은커녕 외면 당하는 꼴인데 주님께 어떤 판단을 받고 있을까? 주님의 판단! 그 엄위한 시간이 우리들 앞에 놓여있다.
❋ 예수님께서 밝히시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실상의 첫 번째는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라 불리는 돌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율법을 해석하며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가르친 것이 아닌 가르치는 일과 행위가 일치되지 않는 모순된 삶이라는 것이다. 모순된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예수님께서는 결코 율법 교사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율법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지식이 참 지식이 되고, 앎이 참 앎이 되는 것은 행함 속에서 드러난다.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는데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입술로는 거룩함 말하는데 거룩한 성품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입술로는 예수사람이라 하는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과 성품이 없다면 그것은 모순이요 가짜다.
(❋ 서부역에서 처음 보는 한 사람- 그는 서부역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그의 온 몸은 얼마나 씻지를 못했는지 그 모습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온갖 때가 잔뜩 묻은 헐렁한 바지는 그가 기어갈 때마다 볼기가 다 드러나게 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있지 못할 정도로 연약했다. 그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교회 다니고 성경 읽고 기도한다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텐데 말이다.) 21세기 오늘- 성경 공부와, 유튜브 설교와, 갖가지 신앙서적과 예배가 넘쳐나는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실까? ❋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 온 세상에 주님의 말씀대로 행할 일이 넘쳐난다. 말씀대로 행하여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한다.
❋ 바리새인들의 실상의 두 번째 고발은 이렇다. 그들은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며 세세하게 실행조항을 만들어서 삶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정작 백성들의 고난과 아픔과 눈물의 일에는 외면했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 또한 과부의 재산까지 탐내는 자들이었으니 그들의 탐욕의 정도를 설명할 길이 없다. 과부들은 돕고 보호하라 하셨는데 그들의 등을 쳐 먹는 사람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셨겠는가? - 또한 바리새인들의 명예욕은 어떤가? 기도 끈으로 불리는 경문과 옷술은 왼팔이나 앞이마에 가죽 끈으로 붙였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율법을 늘 기억하며 거룩함과 경건의 삶을 위해서였다.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그런데 본질은 팽개치고 자신들의 지위와 신분을 드러내고자 경문과 옷술의 크기를 크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하였다. - 나는바리새인이야!
❋ 어디 그뿐인가? 잔치 자리나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인사 받는 것과 그들로부터 랍비님 랍비님이라고 높임 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의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가득 차 있었을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영광 되게 하려는 말씀의 법도가 그들 마음에 충만했다면 어찌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본문 5절에서 주님께서 밝히시는 것처럼 그들의 삶의 목적은 오직 자신들을 높이며, 이롭게 하고자 함이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면 모세의 영성을 생각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가 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받은 말씀이 겨우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를 위함이겠는가?-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명예를 얻고, 재물이 늘어나는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뻐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지키며 사는 것을 가장 큰 기쁨과 소유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 흙에 속한 자들의 참으로 슬픈 자화상이 아닌가? 사람의 모든 걸음걸이를 재시고, 사람의 모든 심장을 살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는 집중하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 집중하는 모양이라니 말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살던 땅을 이어받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과 삶은 어떤가? 마음에 세상 것 아닌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충만으로 채워 삶을 삶답게 세워가는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 본문9-12절: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23: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이시니라 [마]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마]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실체를 다 드러내시고 이제 포커스가 완전히 바뀐다. “그러나 너희는”......그들과 다름으로 살아라! 하심이다. - 제자들과 민중들 곧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삶의 길이다. 1) 첫째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하신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가르치실 선생이요 우리는 늘 배워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웠을지라도 주님께 늘 새롭게 배우는 자세로 살라하심이다.
2) 두 번째는 그 누가 높은 직책, 화려한 자리에 있다 해도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하신다. 이단의 우두머리들은 교주가 되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아버지처럼 높임 받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비단 이단의 교주에게만 있을까? 오늘날 규모가 좀 있다하는 교회 안에서는 목사가 교주가 된 곳은 없을까? 성도들이 목사를 영혼의 아버지처럼 여기는 곳은 없을까? 목회자가 성도들의 영혼을 구원 할 수 있는가? 그런데 목회자를 영혼의 아버지로 부른다면? -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다. -
3) 세 번째는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하신다. 우리의 참된 지도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목회자가 사람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는가? 목회자가 영생의 길을 열어 놓았는가? -우리의 참 지도자 이신 예수님께서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임 당하셨다면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 참 지도자가 되려는가? 그럼 먼저 허리를 숙여 수고하고 땀 흘리는 자가 되어라 함을 말씀한다. - 그러나 너희는 세상과 반대로 살아라!!!- 세상의 길과 다르게 걸어감으로 주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본문:11-12절: [마]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주님의 이 말씀은 실로 충격적인 말씀이다. 세상의 질서는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고,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김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높아져서 섬김 받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질서를 완전히 역으로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있느냐 그 자리를 주신 이유는 낮은 자들을 섬기라하심이다. 높아지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자신을 아주 낮추어라. 낮은 자 보다 더 낮은 자세로 섬기는 그 사람이 아주 높은 사람이다.’ 가르치신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도 그렇지만 오늘날 이 시대와 교회를 보라!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늘의 질서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일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일평생 설교를 하였어도, 일평생 성경을 읽고 배웠어도 - 그 얼마나 섬김의 삶을 살며 그 얼마나 낮아지는 삶을 살고 있는가? (❋ 80-90년도에 한국 교회는 천 이백만 성도였다. 그런데 2023년 현재는 어떨까? 갤럽조사에 따르면 약770만 명인데 그중에 출석 교인은 545만 명이고 가나안 교회 성도는 226만 명이다. - 과연 한국 교회는 왜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가? 신앙의 본질, 곧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삶의 변화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 오직 외적 성장에 몰두한 결과물이 아닌가? - ‘당신이 믿는 예수! 나도 믿고 싶습니다. 당신이 목적 삼은 천국 나도 가고 싶습니다.’ 되어야 하는데 예수! 너나 잘 믿어라! 네가 믿는 예수라면 난 절대 안 믿는다.‘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신앙의 본질, 교회의 본질, 삶의 본질로 돌아가야 마땅하지 않은가? -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살아내야 할 신앙과 교회와 삶의 본질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오늘 우리부터라도 주님이 가르쳐주신 삶을 살아냄으로 한국 교회를 넘어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구원의 완성수를 성취해가는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과 반대로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