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라델비아는 ‘작은 에덴’ 이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였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성과 철학적인 사고가 결합된 헬라문화가 융성해서 지식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도시였다고 전해집니다. ‘빌라델비아’의 뜻은 ‘형제를 사랑하는 자’ 라는 뜻으로 당시 버가모의 왕이었던 아탈루스 2세가 자신의 동생을 위하여 건축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7개의 도시 중에 역사가 가장 짧은 도시였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큰 세력을 가지고서 유대교의 율법적인 교리를 강조하며 살았습니다. 그 의미는 유대인들과는 상대도 안 되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환난과 핍박에 그대로 노출되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상황에 무릎 꿇지 않아 칭찬 듣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2. 이제 우리는 먼저 본문 8절의 말씀으로 생각의 시작을 펼쳐 그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여기에서 ‘열린 문’이란 두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첫째로는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문’ 이고 둘째로는 ‘복음 전파의 문’ 입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이 두 가지는 숙명이요 사명이 되지 않습니까? 열심히 믿는다 하였는데도 천국잔치에 들임을 받지 못하는 성도! 신앙이 있다하는데 사명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 이것은 있을 수없는 비극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교회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으로부터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신앙이요 삶이었기에 그들은 천국잔치로 나아가는 신부된 교회!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사명의 교회! 로 인침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부된 성도! 사명의 성도! 그것입니다.
3. 사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적은 능력/ little strength”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적은 능력’ 이란 첫째로는 ‘교회의 규모가 작았다. 성도가 많지 않았다.’ 는 것과 둘째는 ‘믿음이 크지 않았다.’ 라고 해석을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도의 숫자가 많아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가 큰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뭔가 다른 줄 압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큰 교회가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신 그리스도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일하시지 않으시면 큰 교회는 가지고 있는 그 힘으로 오히려 책망들을 일만 하게 됩니다. 큰 교회의 덩치가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관건입니다.
4. 또한 우리는 큰 믿음을 지닌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큰 믿음을 구합니다. ‘나에게 태산 같은 믿음을 주십시오! 반석 같은 믿음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을 소유한 것처럼 여기지만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종종 봅니다. 왜 그럴까요? 왜 태산 같고 바위 같은 믿음이 무너질까요? 자신의 큰 믿음만 자랑할 줄 알았지 주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믿음인 줄 착각합니다. 적극적인 성격이 적극적인 믿음처럼, 배포가 큰 사람이 큰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것은 성격을 믿는 것이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 지는 믿음이 아니라 열매 맺는 믿음이 관건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약하다 하는 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고 부족한 자를 들어 큰일을 행하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성도들은 심령이 가난하고 청결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증언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9-10) 형제자매여러분! 크기와 높이와 많음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랑은 더욱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연약한 나를 들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힘과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6. 이제 우리는 본문 10절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 말씀을 다른 성경에서는 “네가 인내하라는 나의 명령을 지켰은즉” 혹은 “네가 견디라는 나의 명령을 지켰은즉”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상응 됩니다. 빌라델비아는 서모나 버가모처럼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세력을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당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후미진 곳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난과 굶주림과 헐벗음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협박과 멸시를 당하며,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빌라델비아의 성도들은 오롯이 “인내하라. 견디라. 참으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들의 반열에 세워진 것입니다.
6. 하늘에 속한 사람들인 성도들의 삶은 늘 환난과 핍박과 상처와 고난이 연속되는 도상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쫒아 산다는 것은 세상이 즐겨하는 일들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가 깨달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과 핍박과 상처와 고난이 넘치는 신앙의 철조망을 뚫지 않으면 참된 성도, 강한 성도, 거룩한 성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교회의 역사, 그리고 한 개인의 신앙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의 신앙 지켰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환난과 핍박의 능선을 넘어서서 교회와 성도는 정화되었고 견고해 졌습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양과 염소가 구분되어 선명한 교회와 성도의 역사를 세워왔던 것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환난의 때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으로 굶주릴 때 어려웠을 것입니다. 핍박으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될 때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의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고난을 뚫고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7. 형제자매여러분!
풍성한 결실,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는 기쁨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습니다. 땀 흘리고 수고해야만 합니다. 비를 맞고 바람을 견뎌야 합니다. 뙤약볕의 고난도 지나야만 합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두 달......... 인내하고 견디고 참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기쁨, 탐스러운 열매를 품에 안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하물며 천국잔치에 참예하는 영광을 얻으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야고보서 5장 7-8절에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주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고난당하며 아프고 상처받고 핍박받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주님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그 길이 영원한 승리자가 되는 제련된 순금성도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8. 이제 우리는 본문 11절의 말씀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재림을 다시 한 번 강조 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반듯이 온다. 아버지의 시간이 차면 반드시 그날에 내가 온다.”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시는 그날, 그 시간은 모든 것이 고침 받고 회복되며 새로워지는 시간입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지며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되는 장엄한 날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고, 빼앗겨서도 안 되는 절대 희망, 절대 영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로 승리하고 있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다시 권면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9.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소유한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수십억 혹은 수백억 쯤 됩니까?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서민에게는 자랑할 만한 재산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 그러한 재산이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긴다고 하여도 빼앗겨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지라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나를 향해 예비해두신 영원한 면류관, 승리자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을 소유하게 할 신앙.......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하신 주님의 명령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설령 수십 년 씨앗을 뿌렸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다하여도 여전히 주님의 십자가를 굳게 잡으며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사야는 어찌 그 사명을 감당했을까? 예레미야는.........에스겔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 가운데는 신앙을 굳게 잡지 않으면, 주님을 소홀이 잡으면....... 예비하여 두신 면류관을 놓칠 수도 있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들의 심장이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만 선명히 보이는 우리들의 눈이 되기를 바랍니다.
10. 이제 본문 12절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마감하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 나라에서는 성전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발견을 해야만 합니다. 이 말씀에서 나오는 성전은 원어로 ‘나오스’ 인데 이 뜻은 ‘거주하다.’ 라는 동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의 기둥이 된다. 즉 “그리스도로 승리하는 자! 십자가로 승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그도 영원토록 있게 하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11. 진실로진실로 그렇습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 조건 없이 세상에 왔다가 죄 짐만 가득 쌓아놓고 그 죄 값을 치러야하는 인간에게 최후의 승리, 최후의 상급, 최후의 영광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결은 그리스도로 절망과, 그리스도로 핍박과, 그리스도로 눈물과 그리스도로 모든 세상과 날마다 맞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
이 언약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성취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