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에 대한 아주 의미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한 임금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길옆의 한 과수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무를 심고 있는 한 노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허리가 다 휜 꼬부랑 노인이었습니다. “저렇게 늙은 나이에 무슨 일을 저리도 열심히 하는 걸까? 자식들은 없나?” 임금은 이상히 여기며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영감님! 도대체 나이가 몇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네,.......네 살이올시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노인장! 도대체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허리가 땅에 닿을 정도인데 네 살이라니요?”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의미 없이 산 것이 백년이면 무엇 하겠습니까? 내 삶에 있어서 의미 있게 산 것은 이제 겨우 4년입니다. 그래서 제 나이가 네 살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저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한 해를 더 살았는데 우리들의 영적인 성숙은 어디까지 이르렀습니까? 영적으로 잘 익어 많은 열매를 맺어 허리가 휘었다면, 또 머리가 희어졌다면 좋을 텐데........만일 땅만 바라보며 사느라 허리가 휘었다면? 육체를 즐겁게 하느라 머리가 희어졌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전도서 3장 1-3절에서 말씀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은 시간 안으로 왔다가 시간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차면 다시 영원한 시간 속으로 나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백세 이상을 살기로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칠십 혹은 팔십 세를 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생명은 태어나자마자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 볼 때도 삶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3. 시간은 곧 한 개인의 삶이 됩니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의 삶이 쌓여서 그 한 개인의 인생 역사가 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까지 살아온 시간! 그 삶의 역사는 어떠했습니까? 또한 올 한해, 2014년의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인생이 책이라면, 드라마라면 그리고 인생이 영화라면 맘에 안 들면 새로 만들거나 소각시켜 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살아온 삶, 시간에서 시간으로 쌓아온 인생역사는 그렇게 새로 쓸 수 있거나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온 시간! 그것은 그 인생의 역사가 되어 영원히 기록 됩니다. 그리고 영광의 구세주!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은 하나님 앞에 놓인 기념 책에 하늘에 오를 보배로운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유일의 구원의 길!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육체를 따라 제 뜻대로 살아온 사람은 영원한 심판과 저주의 자리로 떨어지게 됩니다. 말라기 3장 16절에서 증언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4. 그렇습니다. 백세를 살았던지 칠십 혹은 팔십 세를 살아왔던지 아니면 적은 세월을 살았던지 내가 아닌 그 분, 말구유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신 예수그리스도로 살은 사람은 승리자요, 영광의 사람이 됩니다. 그가 억만장자로 살았던지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함으로 살았던지, 명품 옷만 입으며 살았던지 약대 털옷을 입고 살았던지, 대학의 총장으로 살았던지 청소부로 살았던지, 그것은 아무런 조건이 아닙니다. 승리자의 조건, 영광의 사람이 되는 유일의 조건은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올해의 삶! 어떠셨습니까? 걸음걸음 예수님으로 살아오셨습니까? 시간 시간 예수님으로 만들었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여러분이 승리자요, 영광의 사람입니다.
5.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를 기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2014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10절의 말씀을 따라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삶!’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명을 건, 복음 전도로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를 이루며 데살로니가 뿐 아니라 그리스 전 지역, 더 나아가 먼저 믿었던 성도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유럽 한 가운데 이곳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교회가 아닌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신앙이 아닌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신앙으로 세워지고자 했습니다.
이제 1년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과연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삶!’ 이 성취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려움도 있었고 부족함도 많았을 것입니다. 또한 실패한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 부족함, 실패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부르시고 뜻하신 바를 온전히 성취케 하시는 과정이었음을 믿습니다. 온전한 성취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6.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삶을 기억하십니까? 그의 인생, 곧 하나님께 축복받고 ‘열국의 아버지! 믿음의 조상!’ 이 되는 영광의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이 과연 하루아침에 이루어 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하신 하나님의 명령 앞에 과연 아브라함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을까? 그에게는 부끄러움도 실패도 모자람도 없었을까?......... 과연 그랬습니까?
창세기 12장 10-20절에는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실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자로 살아갑니다(창 12:8). 보배의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안 땅에 흉년이 심하여 기근이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께 택함 받고 “복이 될지라.” 했던 하나님의 사람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데도.......!!!과연 어찌 해야겠습니까? 기근이 몰아치는 곳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기근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야 할까요?
7. 이제 아브람의 실패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께 묻고 행하여야 했는데 아브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애굽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 사래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창 12:11). 얼마나 미인이었으면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고백을 했을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로 인하여 ‘잘못하면 죽음을 당하겠구나!!!’ 걱정했던 것입니다. 아내는 빼앗기고 자신은 죽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빼어난 미모를 가진 사래는 애굽왕 바로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사래를 자신의 아내로 취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인 값으로 양과 소와 약대와 나귀와 노비를 가득히 얻게 되었습니다.
8. 형제자매 여러분!
이 일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사람! 아브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고 예배자로 살아가던 사람이 과연 이렇게 행동해도 되겠습니까? 처절한 실패요, 회복 될 수 없는 실수였습니다. 세상에 어찌........ ‘배부르겠다고, 안전히 살겠다.’ 고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이고 남의 아내로 내어 주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왜 실패 했느냐? 그러한 행위가 무엇이냐? 너는 안 돼!!!’ 비난하지 않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아브람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비껴났던 길에서의 회복이요, 실패에서의 구원이요, 모자람에서의 채우심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아브람은 하나님의 참 사람, 아브라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과정과 성취’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에 대한 성취는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이것입니다. (* 2014년 성도님들은 무엇을 심었고 무엇을 거두었습니까? 어떤 소망을 가졌고 이룬 것은, 이루지 못한 것은 ......?못 이루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 안에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9.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를 마감하며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고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너 잘못했어! 넌 안 돼!!!’ 비난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교회의 표어, 신앙의 목표대로 은혜 주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올 해의 과정을 모으셔서 놀라운 승리로 성취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올 해, 우리 성도님들 각 가정이 얼마나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수고하였습니까? 낯설고 물 설은 이 곳,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의 사역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헌신을 하였습니까? 한 해 동안 기도로, 물질로,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신앙의 목표대로 헌신하신 성도님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소망, 넘치는 은혜와 복이 임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시간의 시작도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의 과정도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시간의 완성도 하나님께로 마침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승리와 실패는 예수그리스도의 그날! 재림의 날에 결정됩니다. 주님 앞에 세움을 입으면 그는 승리자요, 주님 앞에 세움을 입지 못하면 그는 실패자가 됩니다.
11. 그러하기에 우리는 오늘의 것에 좌절하고 낙심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 2014년을 딛고서 다시 걸어야 합니다. 실패한 것은 실패한 대로, 모자란 것은 모자란 대로, 승리한 것은 승리한 대로 야훼께 내어드리고 우리는 다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완전한 승리되시는 주님이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흙덩어리가 무슨 힘과 능력이 있어 성취하겠습니까? 친히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부족함과 실패를 더하셔서 마침내 성취, 세우신 뜻을 이루십니다. 이제 믿음으로 그때를 바라보며 더욱 견고히, 더욱 부지런히 그리고 더욱 열심히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세워가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2014년을 마감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가득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