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 우리 성도들의 삶의 표어는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 입니다. 왜 성령의 교회와 성령의 사람이어야 하는가? 첫째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더욱 가까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입니다.’ 라고 하며 더욱 깨어 있는 신앙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세상이 너무 악해졌어. 세상에 망조가 들었나봐’ 라고들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도 ‘종말이 가까이 왔다.’ 고 진단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참으로 극악무도잔인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짐승처럼 죽이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2. 온 세계에서 들려오는 인간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잔악한 소식들! 사람을 짐승처럼 죽이는 이 시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새벽에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찬란한 영광의 때가 그만큼........ 가까이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사단이 모든 사람을 자신의 손아귀에 움켜쥐고서 영원한 저주의 세계로 이끌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 성도들이 지녀야할 무기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세상을 살리는 생명이 되어 여호와 승리의 깃발을 휘날릴 능력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사단도 세상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성도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진리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신이요!(창1:2), 성결의 영이요,(롬1:4) 영광의 영이요, (벧전4:14) 생명의 성령이십니다.(롬8:2) 그리하여 그 힘과 능력으로 그 어떤 세상의 환경과 삶의 조건 가운데서도 우리성도들을 도우시며 지키시고 승리로 이끄십니다.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루어야할 삶의 실제입니다.
4. 둘째로 올 해 우리 교회가 왜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삶,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살도록 하는 힘과 능력과 권세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니 심지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 하는 사람들조차도 돈과 명예와 권력이 그 사람의 힘이요, 능력이요, 권세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인 착각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없으면 그는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의 정체성은 ‘먹고 입고 마시고 즐기고’ 이 범주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수천 억 원의 재산이 있다 할지라도, 제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제 아무리 최고의 권력을 지닌 자리에 올랐을지라도 그가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는 그 물질과 명예와 권력으로 오직 멸망 받고 영원한 형벌에 이를 육체를 위해서만 사용하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과 시대의 탐욕을 거슬러 하나님으로 사는 힘, 불법의 소용돌이와 불의의 태풍 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로 승리하는 능력, 그것은 오직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증언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갈5:16-17)
5. 여러분도 잘 아시는 다니엘은 왕족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갈대아인의 지혜와 학문으로 교육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갈대아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음식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것은 어린 나이에 포로가 되었기에 쉽게 그들과 동화되어 하나님 없는 삶을 살기 쉬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그 환경과 시대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삶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또한 연이어서 바벨론의 총리에 오르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졌지만 그는 여전히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을 하든지 성령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크고 작은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단4:8)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단5:11)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6.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선택 앞에서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즉, 바벨론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법령을 어긴 것입니다.(단6:7) 사자의 먹이로 던져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계속하였습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어찌된 일입니까? 조금만 찔리거나 상해도 고통당하는 육체를 가진 우리는 참으로 연약합니다. 작은 협박에도 두려워서 절절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도대체 어떤 육체를 가졌기에 사자 굴로 서슴없이 뛰어든다는 말입니까? 굶주린 사자에게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고 마침내 통째로 먹힘을 당하는 참혹하고 처절한 죽음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다니엘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고통당하지 않고 아픔을 모르는 육체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사자의 이빨이 부러질 금강석 같은 육체를 가졌을까요? ‘아! 육체로부터 오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텐데........ 그는 무슨 힘과 능력으로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사자의 밥으로 나아갔을까?’
7. 그렇습니다. 육체의 힘으로는 사자의 굴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사자로부터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힘, 하나님의 신으로부터 내리는 내적인 능력이 그 삶을 이끈 것입니다. “그의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그렇습니다. 사람의 아들 다니엘이 신의 아들 다니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입니까? 조그마한 풍파에도 두려워 떨며 도망치는 사람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니엘처럼 그 어떤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사는 성령의 사람입니까? 올 해도 어김없이 하나님으로 살고자하는 여러분과 저의 길을 방해하는 위협들이 쏟아져 내릴 텐데 과연 무엇으로 승리하시겠습니까? “그의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이러한 은혜가 우리가운데 기름 부어지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 셋째로 우리는 왜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성령의 교회와 사람이 될 때만이 사명으로 쓰임 받는 교회, 사명을 완수하는 성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당신의 부활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 누가복음의 이 말씀을 사도행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9. 형제자매여러분!
사명은 절대필수입니다. 그러나 사명의 삶은 인간적인 열정으로만은 안 됩니다. 인간의 열정은 쉽게 낙심과 절망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명은 인간의 의지만으로도 안 됩니다. 인간의 의지는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쉽게 패배의식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명의 삶은 인간의 재능만으로도 안 됩니다. 인간의 재능이란 어느 순간 자기 자랑과 명예를 위해 사용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위로부터 내리는 아버지의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 예수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인간의 도전은 완전한 패배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완수는 오직 인간의 몸에서 신의 능력이 나타나는 성령으로 기름 부어질 때만이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열정! 성령의 인침을 받은 의지! 성령으로 거듭난 재능! 성령으로 세례 받은 인격과 재물........그때만이 사명을 완수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10. 오늘 본문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20여명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뜨겁고 끈질긴 기도와 찬송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한 시간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몇 날 몇 칠을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마가의 다락방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의 눈에 보이면서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각 사람에게 기름 부어져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육체의 사람이 아닌 성령의 사람으로 도장이 찍혀진 날이었습니다.
11. 이 성령 세례의 사건이 있은 후, 120여명의 사도와 제자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방언을 시작하였습니다. 잃어버렸던 하늘의 언어를 되찾은 회복의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 이후 베드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설교를 행하기 시작했고 한 번에 삼천 명씩 회개시키는 능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날 이후 주님의 교회는 더욱 힘 있게 그 지경과 터가 확장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세상 각처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가 되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사명으로 쓰임 받는 교회!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12. 형제자매 여러분!
사명의 교회, 사명의 사람으로의 결실의 능력은 인간적인 조건과 기준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갈5:22-23) 능력이 나타나는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이 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사람보다 강력한 사람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넘어질 일에도 넘어지지 않는 능력! 무너질 일에도 무너지지 않는 힘! 사람의 몸에서 신의 능력이 나타나는 영광! 그것은 오직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13. 우리는 매일 매일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기름 부으심을 간구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친히 그 손에 받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 위에 부어 주십니다. 이제 어찌 하시겠습니까?
이제 시작한 2015년을 지나온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명의 교회로, 사명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있으나 마나 하는 교회 아닌 반드시 있어야 할 교회! 사나 마나 한 인생이 아닌 사명을 성취하고 열매 맺는 성도가 되려면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교회! 성령의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