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소아시아 일곱 개의 교회 중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를 관통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은행들이 모여 있었고 아주 고급스런 양모 산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와 눈에 바르는 특효약이 유명하였고 그로인하여 의술학교도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과 배경으로 인하여 라오디게아는 아주 부유한 도시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부유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황금만능! 어땠을까요?.......당연했겠지요. 돈 중심의 사회.........그것도 당연했겠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그것도 당연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의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야 할 교회와 성도들마저도 세속에 묻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의 걸음을 칭찬은 없고 책망만 들었던 라오디게아 교회 안으로 옮겨보겠습니다.
2.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의 말씀은 우리들로 하여금 끝없는 사랑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위로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 계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육체의 소욕과 세상에 대한 탐욕이 가득한 옛사람 즉, 자아가 있고서는 도무지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아가 판을 치는 옛사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 정 반대의 길인 자기사랑, 세상 사랑으로만 치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평생 마음껏 쓰고도 남고...... 또 남을 재산이 있음에도 여전히 모으고...... 또 모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3.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새 계명을 성취하는 삶을 살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이웃과 더불어 애통할 줄 아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즉,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는........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는(빌1:20)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위에 세워졌던 라오디게아 교회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살도록 요구하는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본문 20절에서 증언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세워졌던 교회가 어느새 그 본질이요, 핵심이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문 밖으로 쫓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만의 교회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쫓겨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저 같으면 ‘뭐 이런 것들이 있어! 안되겠군!’ 하고 오히려 그들을 내 쳤을 텐데.......주님은 쫓겨나신 그 문밖에 서서 그들을 향하여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똑 똑 똑 똑!........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이때 그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4. 형제자매 여러분!
왜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런 참혹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예수그리스도를 쫓아낸 교회!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동댕이쳐버린 교회!...... 그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요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17절에서 증언합니다.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그렇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말했듯이 그들의 문제는 ‘부요해서 부족함이 없었다.’ 는 것에 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들의 그 부요함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근사한 예배당을 건축했을까요? 또한 그 안에 채워진 성물들은 얼마나 값비싼 것들이었을까요? 그리고 그곳에 모여든 회중들은 그 수준과 격식에 맞게 얼마나 교양 있고 세련되게 행동을 하였을까요?
실제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여의도광장의 절반 정도 되는 약 40만평의 땅이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엄청난 규모의 예배당 외에 1.500평정도의 원형극장과 약 만 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원형운동장뿐 아니라 다양한 부속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더불어 살아야 할 교회가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결국 자신들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고 실제이신 예수님은 문 밖으로 쫓아내버리고 자신들만을 위한 교회, 자신들만을 위한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으로 살면 뽐내고 살고 싶은데 가난해 져야 하니까.........자신들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세우고 살면 먼저 섬김 받고 싶은데 머리 숙여야 하니까........ 자랑하며 살고 싶은데 겸손해야하니까....... 주님을 문밖으로 내동댕이친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교회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과연 어떠했을까? 과연 복음을 복음대로 전했을까? 귀에 듣기 좋은 말잔치만 한 것은 아닌가? 복 받으시오! 복 받으시오! 웅변만 한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6. 형제자매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값진 것으로 건축된 예배당을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가장 귀한 것, 가장 최고의 것으로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값지고 보배로움을 자랑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또한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한다면? 그곳 그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곳,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됩니다.
7. 주님께서 본문17절로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주님의 말씀이 열매 맺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기준과 평가를 뒤집어 버립니다. 부요한 사람, 마음에 기쁨의 강이 흐르는 사람, 존귀한 사람, 선명히 보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그들은 세상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소유하고 누리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예수그리스도로 더불어 사는 사람,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열매 맺는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부족함이 없을 만큼 가졌으나 가련하고 곤고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가난하나 부요하고 보배로운 사람입니까?
8. 이제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재산, 곧 부에 대한 성경의 견해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아야만 합니다. 과연 재산과 부에대한 성경의 견해는 어떠한가? 참으로 중요한 견해들이 많지만 그중 세 가지만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는 사실입니다. 시편 24편 1절과 역대상 29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지금 내가 ‘내 것!’ 이라고 여기는 것, 그것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유물은 실상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하기에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그 분께 합당하면 더 부요하고 풍성하게 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면 더 귀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9. 둘째로 재산과 부에대한 성경적인 견해는 재산이 많으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요함을 신뢰하는 대신 자기 자신과 소유한 것을 신뢰하게 되는 유혹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52편 7절과 마태복음 19장 22-23절에서 증언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사람이 재물에 매이면 사람다움을 잃습니다. 돈을 쫓아 사니까 그에게서는 무엇을 하든지 손에 쥐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이익을 얻는 것에는 결사적으로 달려들지만 손해나는 일을 절대로 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에게서는 사람냄새가 안 나고 돈 냄새만 납니다. 그런 사람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가 그 마음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10. 예수님께 나왔던 부자청년은 왜 그 길로 주님을 따르지 않고 근심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을까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욱 사랑하며 높이며 신뢰하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또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왜 주님으로부터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않다.” 는 책망을 받은 것입니까?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재물을 붙들면 하나님을 잃습니다. 순간의 것을 얻고 영원한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들면 자신의 소유를 놓아야만 합니다.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이웃을 위해 나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우는 만큼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그에게 채워집니다. 형제자매여러분! 무엇이 저와 여러분의 힘이요 의지입니까?
11. 셋째로 재산과 부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는 무엇을 어떻게 심느냐? 곧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에 관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3-34절과 고린도후서 9장 6-7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과 하늘의 이치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악을 심으면 그와 그 자손에게 재난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을 심으면 그와 그 자손에게 은혜가 단비같이 내립니다. 육체를 위하여 살면 죽음을 거두고 주님을 위하여 살면 생명을 얻는 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12. 여러분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떻게 드리십니까? 수입이 생기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먼저 구별하여 드립니까? 아니면 쓸 것 쓰고서 지갑에서 적당히 떼어 드립니까? 기도로 준비하여 드립니까?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드립니까? 감사로 즐겨내십니까? 아니면 인색함으로 억지로 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감사로 드리는 예물은 내 소유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여러분의 손안에 고스란히 다시 돌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신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최고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정직해야 합니다.
13.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랑하고 있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는 그를 칭찬하지 말라” 오늘 부와 재물에 대한 저와 여러분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최소한 위에서 말씀드린 이 세 가지를 마음에 두고 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욱 복되게 하시고 존귀하게 하시며 그것이 영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본문 21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며 오늘의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