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역에서 만나 라오스의 청년들..........예배를 모르는 사람보다 가련한 사람은 없다. 예배는 곧 피조물인 인간존재를 발견하고 자신의 창조주, 곧 자신의 시작과 마침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1. 오늘 우리는 지상의 교회에 대한 상태를 대표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환상을 본 사도 요한이 다시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 나라에 이끌림 받아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는 말씀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사도요한에게 지상의 교회들을 보여 주시고 곧 이어서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광경을 보여주셨을까? 그것은 지상의 교회는 그것으로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와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하늘까지 열어주시고 그곳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을 덧입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자 함입니다. 곧 이 땅에서의 예배자로 온전히 승리한 사람에게는 하늘에서도 예배하는 자로 서게 되는 은혜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생활 속에서의 예배자! 제사의 예배자! 로 온전하게 서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예배자로 승리해야만 하늘의 예배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2. 이제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할 말씀은 본문 2절입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그렇습니다. 열린 하늘 문을 통하여 하늘에 오른 사도 요한은 그곳에서 보좌를 베푸시고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영광중에 영광이 사도 요한에게 덮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육체는 하나님을 보는 순간 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도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육체가운데 임하면 그는 죽지 아니하고도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를 보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서 죽어서가 아니라 육체를 가지고서도 하늘에 오르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그도 성령에 감동되어 셋째 하늘 곧, 삼층 천까지 올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 세계에 대한 놀라운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2절과 4절에서 증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삼층 천 까지 오르는 영광을 입었는지 말입니다. 우리도 그곳에 오를 수 없을까요? 과연 우리에게는 그 세계를 보고 듣는 것이 금지 되어 있을까요?
3. 유대의 랍비들은 이러한 하늘의 세계에 대하여 어떤 이는 이층 천, 삼층 천 또 어떤 이는 오층 천, 칠층 천, 십층 천이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시편 68편 33절에서는 “하늘들의 하늘”이라고 표현하고 신명기 10장 14절에서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늘의 세계가 다양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내용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물질세계와 분리되어 계심,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알리기 위한 실제이며 표현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높고 높은 하늘에서, 그 깊고 깊은 하늘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계실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할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이 말씀의 의미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 그 주권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또한 온 하늘과 온 우주와 모든 세상에 베풀어 두신 피조물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을 때를 따라 친히 성취해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들녘에 아무렇게나 피어져 있는 것 같은 꽃들도........ 수많은 참새중의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 특별히 영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보좌에서 친히 저와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를 성취하여 가신다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0-31)
그렇습니다. 오늘은 비록 힘든 시간을 지나야 하지만.......... 오늘은 비록 눈물이 마르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재는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던져진 것 같지만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실제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까지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존귀하게 빚으신 나를 마침내 세우신 뜻으로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마침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의 놀라운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5. 이제 우리의 발걸음을 본문 3-7 절을 향해서 옮겨 보겠습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6.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이 목도한 하늘에 펼쳐진 보좌와 그 주위의 광경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보좌 주위에는 녹보석과 같은 빛이 더욱 선명하게 비취는 무지개가 둘러 있었습니다. 이 무지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언약의 상징입니다. 또한 심판 가운데서도 긍휼의 끈을 놓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 보좌 둘레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신약시대의 열두 사도, 혹은 구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서 그들을 위해 마련한 보좌에 앉아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까지 앉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 자리를 수천억 원의 돈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자리를 유엔 사무총장이나 대통령이나 EU 연합 수장과 비교할 수 있을까?..........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것과 비교될 수 있을까요?
7. 사도요한이 다시 하늘의 세계를 목도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능자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을 나타내는 번개와 같은 음성과 우레 소리가 울려나고 있었습니다. 또한 보좌 앞에는 모든 교회를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나타내는 일곱 등불이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좌 앞에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 같기도 하고 송아지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고 독수리 같기도 한 이 네 생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네 생물을 사복음서로 이해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의 네 명의 사도로 이해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 또 어떤 사람은 생명과 지성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8. 그중 한 가지 참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폴리갑의 제자로 리용의 감독을 지냈던 이레니우스가 이해한 것인데 그는 이 네 생물을 사복음서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사자는 모든 피조물의 왕을 대표하기에 왕의 복음으로 불리는 마태복음으로, 송아지는 모든 피조물의 인내와 근면과 섬김을 상징하기에 섬김의 복음인 마가복음으로, 사람은 인자이신 주님을 나타내는 누가 복음으로, 독수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요한복음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의 교회들을 가보면 가끔 설교단에 이 네 생물을 조각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여행 중에 그러한 것을 보시면 ‘아! 그런 것이었구나.’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9. 그런데 우리가 힘써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보좌와 그 보좌를 둘러선 광경보다 더 놀라운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과연 이 세상에 이보다 더한 영광, 이보다 더한 보배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단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사도요한이 전하는 몇 구절의 말씀만 보았는데도 우리의 모든 정신이 그 영광의 세계로 몰입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늘 세계가 마음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목숨 걸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소유하려는 것일까요? 그가 차지한 세상의 것으로는 하늘의 세계를 터럭만큼도 차지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과연 무엇으로 하늘의 세계에 다다르며 그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과연 어찌 살아야 영광의 하나님 보좌에 우리도 둘러서게 될까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12:33)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가진 모든 소유를 다하여 주님의 삶을 살라하십니다. 주님이 드러나도록 가진 생명을 이웃을 향하여 다 사용하라 하십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목숨 걸고 이 땅을 차지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소중한 생명을 팔아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습니까?
10. 이제 우리는 본문 8절로 11절의 말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의 예배,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증언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에 까지 올랐습니다. 그 하늘에서 드려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목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류 최초로 천상의 예배에 대하여 떨림으로 증언하게 됩니다. 하나님나라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나라에서는 무엇을 하게 될까? 증언하는 것입니다.
11.‘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주님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만물은 주님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밤과 낮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끝없는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감사가 드려지는 것을 보고들은 그대로 우리성도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볼까요? 주님께서는 왜 사도 요한에게 이러한 천상의 예배를 보여 주셨을까요? 또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실상을 본 후에 하늘의 예배의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사도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땅의 예배의 실상과 하늘의 예배..........그 극명한 차이!
12. 저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이러하지 않으셨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란다. 지금 땅에서 드려지는 너희들의 예배는 바로 이곳 하늘예배의 실제란다. 그러니 네가 목도한 예배의 광경을 증언함으로 땅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최고로 드려지도록 하여라. 더욱 소중히 드려지도록 하여라. 흠이 없는 참예배가 되게 하여라. 땅의 예배에서 신령과 진리로 승리한 사람만이 이 영광의 예배에 참예할 수 있단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진실로 신령과 진리로 충만합니까? 온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삶을 예배로, 예배를 삶으로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와 영광의 자리입니다. 예배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자신의 삶에 열매 맺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예배는 하늘로 이어지는 예배의 실제입니다. 과연 오늘 하나님을 향한 저와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아버지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