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지난주,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진 일곱인으로 봉함된 두루마리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일곱인으로 봉함된 완전하게 닫혀져 있고 가려진 그 두루마리 책은 우리 인생들의 삶에 대한 심판과 보상 그리고 징벌에 관한 책이요, 두 눈 다 가졌다고 소리치지만 하나님의 세계를 향하여 소경된 사람들이 읽기 싫어하고 읽고 싶어도 읽을 수없는 책이요, 하나님의 시간 곧 마지막 때에 있을 일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뒤의 말씀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을 함께 얻고자 합니다.
2. 이제 본문 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하늘나라에서 펼쳐지는 천상의 예배, 하늘예배의 그 거룩하고 장엄한 광경을 목도했던 사도 요한이 이제는 웬일인지 크게 소리를 내어 울고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중에 영광 속에 잠겨있던 그가 왜 심장이 타들어가듯 소리 내어 크게 울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져있는 두루마리 때문이었습니다.
본문2절에서 말씀합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즉, 닫혀있던 것을 열어야 하는데......... 잠겨있던 것을 풀어야 하는데.......... 감추어 있던 것을 보아야하는데,......... 그에 합당한 자가 없었기에........... 그 비밀을 풀어헤칠 자가 보이지 않기에 사도 요한은 통곡하는 것입니다. (몇 달 전 11년 만에 발견된 금괴: 치매로 인하여 65억 상당의 금괴가 있다는 사실도 알리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3. 형제자매여러분!
한번 생각해 볼까요? 여러분은 과연 오늘의 여러분의 삶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어디로부터 생명이 왔었는지? 오늘의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또한 오늘의 이 삶에 대한 비밀이 풀리지 않은 채 여러분의 존재가 죽음과 함께 어디론가 내동댕이쳐진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날에 최후의 승리 곧 영혼에 구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여러분과 저의 다가올 운명은 얼마나 비참하며 얼마나 참혹하겠습니까? 이 땅만 있고 하늘로 나아가는 길이 닫혀있다면?.....,,,, 수고와 땀 흘림만 있고 추수가 없다면? 그리고 나날이 더해가는 죄악을 풀어헤칠 길이 없다면? 말입니다.........홍해가 갈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시편49편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가련하다! 가련하다!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하는 비참한 존재여!!! 삶의 비밀을 밝혀줄 존재를 만나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영혼에 구원을 입혀줄 전능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4. 그러나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는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요한처럼 심장이 터질듯 소리 내어 울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십사 장로 중 한 사람이 가르쳐 주듯이 다윗의 뿌리에서 태어나신 그 영광의 존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아 살다가 영원한 저주 아래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할 우리흙덩어리들에게 영생의 길을 놓으신 분! 친히 저주의 십자가로 오르시고 그곳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시고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5.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소리 높여 울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너무도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심장이 타는 듯, 고통스럽게 울어야만 합니다. 죄가 태산같이 쌓여서 영원한 저주와 영원한 형벌과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지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울 것이 아닙니다. 절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나의 주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13절) 아멘! 아멘!!! 주님이 우리의 삶의 모든 비밀을 밝히시고 구원하시며 완성하시며 성취하시는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매일의 삶을 도우시며 이끄시고 성취하십니다.
6. 이제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렇습니다. 사도요한은 이제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과 그의 심장을 한 곳으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둘러싼 무지개를 넘어서서........... 도무지 눈을 뜰 수 없는 거룩한 흰 옷과 하늘의 황금면류관을 쓰고 있는 이십사 장로들을 넘어서서.......... 사자와 소와 사람의 모습과 독수리 형상을 하고 있는 신비한 존재들을 넘어서서........... 사도 요한을 몰입하도록 한 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으나 죽은 채로 머물러있지 않고 다시 살아난 어린양이었습니다. 다시 살아난 그 어린양이 하늘의 모든 광채와 아름다움과 영광을 온전하게 하는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7.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하늘의 빛난 보석과 광채와 아름다움, 이십사 장로가 무슨 수용이겠습니까? 하늘이 하늘 하늘이 되고, 영광이 영광이 되는 그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늘에서도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과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봄에 피는 꽃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이 되는 것! 가을이 가을됨! 여러분의 기쁨이 참 기쁨이 되는 것! 여러분의 성공이 성공됨! 여러분의 자녀가 자녀 됨.......그 모든 것의 처음과 마지막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차지했다하더라도 그 곳에 구원의 유일한 열쇠이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26)
8. 그런데 죽임당한 것 같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그 어린 양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채워진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채워진 희생 제물이었다는 의미는 첫째로 ‘죄 없는 희생 제물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본성이 가득 채워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으니까 죄가 도무지 있을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려고 친히 십자가로 오르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채워진 희생 제물이었다는 의미는 ‘완전한 희생 제물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일곱 영을 지니신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었기 때문에 두 번 제사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친히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채워진 희생 제물이었다.’는 의미는 ‘완전한 승리의 제물이었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죽이는 제사였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소나 양이나 염소나 새를 희생 제물로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린양의 제사는 죽이는 제사에서 살리는 제사로, 일회성의 제사에서 영원한 제사로 드려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자유하고 영원토록 존귀합니다.
히브리서 9장12절에서 증언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영원한 속죄!!!
9.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진실로 알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참으로 간단치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비밀! 수없는 죄악과 넘어짐 속에서도 이 땅에서의 승리와 영생의 나라를 향하여 여전히 행진하고 있는 비밀은 바로 하나님의 완전하신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죽음 당하셨다는 사실 때문 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흙덩어리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가 죄로 인하여 저주와 죽음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거룩한 천상의 예배자로 세움을 입게 하는 절대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믿습니까?
본문 9절에서 증언합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예수 피, 나의 생명!!! 예수 피, 나의 구원!!! 예수 보혈, 나의 자유!!!
10.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밝혀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피로 값 주고 사셨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히브리말로 ‘아고라조’ 인데 그 뜻은 ‘우리의 삶은 예수그리스도의 소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사는 길은 철저하게 세상길로 나아갑니다. 내가 주인 된 삶이란 육체가 이끄는 삶이요, 육체의 본성은 세상의 즐거움을 쫒아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의 주권을 오직주님께만 드려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미 나를 주장할 수 있는 자기 주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완전하신 피로 나에 대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11. 함께 생각해 볼까요? 자기 주권이 없는 성도에게서의 충성은 어떨까요? 절대 충성입니다. 헌신은 어떨까요? 철저한 헌신입니다. 순종은 어떨까요? ‘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지금은 좀 힘들고요........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해서요....... 나는 장가든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하지 않고 두 말 없이 순종합니다. 또한 성도간의 단점은 어떨까요? 떠벌립니까? 아니요. 흔적도 없이 가려줍니다. 형제의 눈물과 아픔에는 어떨까요? 못 본체 합니까? 아니요 나의 눈물로 나의 아픔으로 받습니다. 형제의 고난에는 어떨까요? 나 몰라라 할까요? 아닙니다. 함께 그 짐을 나누어집니다. 왜냐하면 나의 주권은 바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 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2. 둘째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셨다” 는 또 다른 의미는 ‘엑싸고라조’ 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을 의미합니다. 곧 ‘내가 당해야할 저주와 죽음을 친히 자신의 몸에 담당하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의미입니다. 그러하기에 ‘거룩한 사람’으로 부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저주대신 복의 길을, 죽음 대신 생명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비록 때로는 세상에서 이런 저런 일로 수치와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가난과 눈물을 머금기도 하고, 고난과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신 거룩한 사람! 성도입니다. 또한 우리의 정체성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영생의 존재인 것입니다.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13.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도상에 서있는 성도의 길을 누가 가로 막을 것입니까?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장애가 되겠습니다. 이 놀랍고 신비한 일을 이루신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께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이제 본문13-15절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영광돌리겠습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