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닌 눈 밖의 세상까지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의 삶은 틀림없이 눈 밖에 펼쳐있는 그 세계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살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창조하신 하늘나라를 보는 영이 있다면? 절대전능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그 나라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면..........단언하건데 그 삶은 그 나라에 합당하도록 세워갈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함!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삶을 향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의 진리입니다. ‘너도 그 나라를 발견해야한다. 그리고 너도 그 나라에 합당한 삶으로 세워 가야한다. 설령 그 길이 순교자가 되는 것이라도’
2. 사람들은 왜 이 세상에 그토록 목숨 걸고 살아갈까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활동무대인 지금의 이 세상이 끝나는 것, 자신의 삶에 죽음이 오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만일 이 세상의 종말과 자신의 죽음을 돈으로 막을 수 있다면 그래서 ‘종말방지세, 죽음방지세’를 내야한다면 사람들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 세금을 낼 것입니다. 세금을 어떻게 하면 덜 낼까 궁리하는데 이 세금만은 아주 다를 것입니다.
‘세상아! 나와 함께 영원하렴!’ 오히려 더 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세상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속한 모든 것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마침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이 차면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약속하신대로 성취됩니다. 전도서 3장1절에서 증언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그래서 지금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버스 지나고 손들어봐야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3. 일곱 인으로 가려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이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완전히 열리는 날, 그날은 잔치하는 날인 동시에 재앙이 임하는 날입니다. 보이는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에 합당하게 살았던 성도들은 천상의 예배자로서 하늘에 오르는 날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서 끝없는 기쁨과 감사와 영광을 누리는 은혜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삶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육체에 목숨 걸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상인 진노와 죽음이 임합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있고 없고 높고 낮음에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50)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은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삶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죽음가운데로 내려가는 삶입니까?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영원한 죽음가운데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명은 무엇입니까?
4. 오늘 본문은 일찍 죽임을 당하셨고, 사람들을 그 피로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일곱인으로 봉한 두루마리의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 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의 인을 하나 둘 뗄 때마다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마치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그 참혹한 상황들은 이렇습니다. 땅에서 화평을 제거해 버리니까 사람들이 서로 죽입니다. 제각각 손에 칼을 들고 사니까 사람의 목숨이 파리처럼 가치가 없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평화를 거두시니까 짐승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떨까요? 짐승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고 말하면 과장된 것일까요? 얼마나 참혹한 일들이 우리 귀에 들립니까?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다. (지난 금요 거리예배 전에 한 젊은이가 다가와 지갑을 열더니 노숙인들 7-8명에게 천포린트씩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평화가 거두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사나와지면 어찌될까요?
5. 또한 다른 인을 떼니까 이제는 물가가 너무 치솟아 먹고 살 일들이 걱정입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는데도 쉴 틈이 없습니다. 열심히 모은다고 모았는데 또 뛰어오르는 전세 값을 당할 길이 없습니다. 과연 언제나 이 고단한 수고를 그치고 쉴 수 있을까요? 에덴동산의 은혜를 다시 누릴 길은 없을까요? 또한 전쟁과 기근과 역병, 즉 바이러스로 인해서 사람들의 4/1이 죽임을 당합니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바이러스의 변이를 의학이 어떻게 따라잡겠습니까? 변종바이러스가 여기저기에서 마구 터지지 않습니까? 전문가들은 변종바이러스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순식간에 죽음을 맞습니다. ‘나는 아니야! 나는 괜찮을 거야!’ 했는데 말입니다. 인은 하나 둘 떨어져서 마지막심판으로 나아가는데 여전히 이세상이라니요?........ 눈뜬 소경아! 귀 있는 귀머거리야!
6. 또한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광명한 빛을 발하던 해가 염소 머리털로 짠 검은 상복처럼 검게 되어 버립니다. 그 밝고 아름답던 달빛이 핏빛으로 변합니다. 초롱초롱 빛나던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떨어져 내립니다. 그리고 하늘이 종이가 둘둘 말리는 것처럼 말려져서 사라져 버립니다. 또한 모든 산과 섬들이 있던 그 자리에서 요동치며 이곳저곳으로 흩어집니다. 여러분! 도대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정말 공상영화에나 나옴직한 상황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전개되는 상황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져 가고 있고 반듯이 실행되어질,.......... 반듯이 속히 이루어질(must soon take place)저주와 재앙과 진노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7. 요한 계시록 1장 1절에서 말씀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듯이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인 것입니다. 그 진노의 날은 어쩌면 본문에 기록된 상황보다도 더 참혹한 심판으로 다가올지 모릅니다...........
본문15-17절에서 증언합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아! 진노와 재앙과 애곡의 날이여! 과연 누가 그 엄위한 심판을 피할 수 있으랴? 돈으로 피할 수 있을까? 세상권력으로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식으로 모면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그날엔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있으니.......오호통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8.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제는 심판이 아닙니다. 저주와 진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본다고 하나 소경된 이 세상의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할 기회, 하나님을 만날 기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기회를 허락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에 심판을 끝내실 수 있습니다. 한 순간에 죄악으로 오염된 모든 것을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바로와 애굽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신 것처럼, 금송아지 앞에서 망령되이 행하였던 사람들을 심판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진멸시키지 않으시고 시간을 두며 인을 하나하나 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켜 주시려는 은혜, 한 사람이라도 더 천상의 사람으로 세우시려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쉽게도 사람들은 그 놀라우신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여전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복음을 거부한 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 생명을 거부하고 죽음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아!!!
9. 마가복음 12장6-8절에서 말씀합니다.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친아들이신 예수님까지 보내셨건만 회개에서 먼 이 시대를......... 돌이킴에서 눈 가리고 있는 이 세대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사도바울이 권면 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렇습니다. 먼저 된 우리는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마지막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하여 헌신해야만 합니다. (허또시 학교에서 온갖 욕을 품고 사는 아이를 위한 기도)
10. 둘째로, 오늘의 말씀의 또 다른 메시지는 믿음의 성도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라! 마지막까지 선한싸움을 싸워라! 마치 순교하는 것 같은 믿음으로 복음이 되어라! 하는 메시지입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 까지 하시려나이까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우리는 이 말씀을 잘못 읽으면 이미 순교한 분들이 자신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는 탄원의 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신 말씀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기다리니,....... 내가 인내하니......... 너희도 인내하며 맡겨진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수가 차기까지” 라는 말씀처럼 세상으로부터 그 어떤 유혹과 핍박이 넘칠지라도 그것에 넘어지지 말고 순교자의 정신으로 세상과 맞붙어 싸워가라는 것입니다.
11. 형제자매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부름 받은 우리성도들의 싸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면 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싸움은 실패가 영광의 승리로, 눈물이 환희의 기쁨으로 바뀌는 싸움입니다. 본문 2절에서 증언합니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승리의 흰 말을 타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한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더불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 앞에 놓인 사명은 무엇입니까? 조금 힘들고 낙심된 일이 있을지라도 오늘 살아가는 자리! 바로 그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죽음으로 치닫는 영혼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12. 본문 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순교자의 피에 의하여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너도 그 복음을 위하여 피를 흘리라. 순교하라. 네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는 제단 앞에 놓여 지기까지 헌신하라.’ 그런 의미입니다. 이 거룩한 도전이 저와 여러분에게서 성취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