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질문을 드리며 오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무슬림에는 구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 해 뜰 때, 정오에, 이른 오후에, 저녁에, 밤에 자신들의 성지인 메카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 기도하는 살라트(salat)를 행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인 아랍어인 알라를 향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알라를 향한 그들의 열심과 정성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비좁은 상점에서든지, 버스터미널에서든지, 공항에서든지 신발을 벗고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일반사람들 심지어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동일하게 섬기는 그리스도인들과도 확연하게 구별이 됩니다.
또한 그들은 무함마드가 꾸란 계시를 받기 시작한 달인 라마단절기에는 한 달 동안 금식을 행합니다. 가능한 먹는 것을 절제하고 침을 삼키는 것도 삼갑니다. 그만큼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토록 절제하며 정성을 다하여 알라를 섬김에도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유일한 구원의 길로 허락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인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화요사역가운데 만난 쿠르드족의 신사) 오늘 우리들의 영혼은 무엇으로 인 쳐 있습니까?
2. 오늘 본문은 계시록 6장의 연장선에 있는 말씀으로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을 떼는 사이에 있는 말씀입니다. 즉,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거침없는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성도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다룬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엄위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는 참혹한 징벌입니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그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가진 자로 살았다면, 능력 있는 자로 살았다면, 높은 자로 살았다면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크게 물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인 성도에게는 예외가 됩니다. 천명이 죽음의 칼에 넘어질지라도 만 명이 죽음의 불에 삼킴을 당할지라도 성도에게는 재앙이 미칠 수가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증언합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시91:7) 여러분! 성도는 왜 심판의 재앙으로부터 예외가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성도들의 영혼에 직인으로 찍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재앙을 넘고 죽음을 넘게 하는 유일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 사람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3. 애굽은 세상이요, 애굽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애굽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부와 능력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을 노예로 부린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고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첫째재앙으로부터 아홉 번째 재앙이 몰아치기까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의 부와 힘과 권세가 재앙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자들의 삶의 실상인 것입니다. 세상이 영원하고, 소유한 것이 힘인 줄 알고 날뛰는 완악함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의 결국은 애굽의 모든 초 태생, 처음 난 것들이 다 쓰러지는 죽음이요 애곡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흐르는 구원의 피가 그들에게는 흐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12장 23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과 의지는 무엇입니까? 진실로 자신의 영혼의 문설주에 직인으로 찍힌 예수그리스도의 피 맞습니까? 혹시 세상 사람들처럼 지갑에 돈 떨어지면 힘 떨어지는 논리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절대 힘!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4. 이제 본문 3-4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합니다. 그래서 구원 받을 사람의 수를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는 것을 부정하는 신천지와 여호와의 증인들 같은 이단의 무리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미혹합니다. 그리고 가정까지 파탄시킵니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는 언제까지나 구원받을 사람에 대한 상징 수입니다.
5. 만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십사만 사천 명 만 구원받게 된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 아니라 경쟁이 되어 버립니다. 영생은 예수그리스의 십자가 죽음과 보혈이 아니라 상대평가에 의해서 차지하는 욕심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경쟁으로 차지하는 것일까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일까요? 아니면 상대평가에 의한 욕심일까요?
에베소서 1장7절과 2장8-9절에서 증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입니다.
6. 그렇다면 우리들의 궁금증은 왜 성경은 인 맞은 자의 수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 곧 십사만사천명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첫째는 어떤 경우에도 오직 주님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복음 되어 복음을 증언하는 신약의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완전함, 정확함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음에 대한 상징인 것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곧 정확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십사만사천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침을 받은 그 어떤 사람도 누락됨 없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것을 받침해주고 증명하여 주는 구절이 오늘 본문 9절입니다. “이 일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7. 그렇습니다. 구원받을 자의 수는 십사만 사천 명이 아니라 각 나라와 족속과 방백과 방언에서 모여든 능히 셀 수없는 큰 무리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복음 되어 살아가는 우리가 바로 그 구원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실로 예수님의 보혈로 인침을 받아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사단과 그의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믿음으로 대척점에 서면 반드시 승리하신 어린양의 영광이 우리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학업에서도, 사업의 현장에서도, 직장에서도.......
8. 이제 우리는 이쯤에서 인(seal)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도대체 성경에서 말하는 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첫째로 인은 진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2-3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는 삼위일체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와 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고서 ‘하나님께서 참되시다’ 아멘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진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면 우리 영혼에는 하나님의 인이 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말씀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 아멘의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과연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인이 쳐지는 이 엄위한 시간에 말입니다.
9. 둘째로 인은 주인 됨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9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인 교회는 하나님의 직인이 찍혀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 쳐진 교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아신바 된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성도들의 이름을 아십니다.(사45:4) 그들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고 발자취를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행로를 은혜와 사랑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오직 두부류로 나뉩니다. 206개 나라, 삼색 인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직인이 찍힌 하나님의 사람인가? 사단의 소유인 세상 사람인가?(요8:44) 오직 두 부류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국은 같은 하늘아래서 살고, 같은 양식을 먹고,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일터에서 일할지라도 전혀 다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하늘과 땅이 도무지 만날 수없는 것처럼 결국이 다릅니다. 오늘 나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10. 셋째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인에는 보증과 확증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과 에베소서 4장 30절에서 말씀합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말씀의 사람, 교회의 사람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보증 받은 사람이 됩니다.
곧 성령을 통하여 이중 삼중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것을 확증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사람이 되면 믿음의 선진들처럼 세상 사람들이 행할 수없는 일들을 행하는 기적의 삶을, 신비의 삶을, 능력의 삶을, 권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소유됨의 확증인 하나님의 능력이 기름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새롭게 인침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선명함이 사라진 이 시대에 뚜렷한 구별을 이루는 은혜가 임하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 이제 본문 13-1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대상입니다. 구원의 문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습니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높은 자든 낮은 자든 누구에게나 구원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승리의 흰옷을 입을 사람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무나 승리의 흰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12. 그렇다면 과연 누가 십사만사천의 구원의 대열에 서는 승리의 흰옷을 입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는 말씀처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세상에서 환난을 이기고 나오는 사람들, 어떤 시련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이긴 사람들, 그들만이 구원의 대열에 서는 승리의 흰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골로새서 1장 19-22절에서 증언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13.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는 죄악 중에 출생하여 죄악과 함께 살다가 그 죄 값으로 죽어야 하는 우리 인생이 구원을 입는 유일한 직인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피의 직인이 영혼의 이마에 찍혀져야 합니다. 세상 만물을 다 차지하였다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보석을 모아 꾸민 집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에 예수피의 직인이 찍혀지지 않으면 그보다 비참한 인생은 없습니다. 왜냐? 예수 피는 하늘과 세상을,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구별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배고픔이나 목마름도 없고 눈물이나 한 숨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예배와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9-10절의 말씀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예수피로 인을 받고 천상의 예배자 되어 하나님과 어린양예수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예배하는 은혜위에 은혜가 우리가운데 성취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