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일절은 불의에 대한 공의의 항거였습니다. 불법에 대한 진리의 저항이었습니다.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대한사람의 음성을 들으셨고 회복시키셨습니다. 불의와 불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와 공의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우리는 지난번 계시록 6장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 떼실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한 번에 심판을 끝내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인을 떼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아버지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과 사랑하심을 깨닫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 증언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아버지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과 사랑하심의 강이 흐르는 은혜 받을 때요 기회의 시간입니다. 이때에 더욱 힘써 복음 되어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늘 본문은 6장에 이어서 일곱 번째 인을 떼실 때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의 말씀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일곱째 인을 떼시자 다른 인을 떼실 때처럼 재난과 재앙이 곧장 쏟아져 내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시 동안쯤” 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일정기간 완전한 정막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왜 재난과 재앙의 심판이 곧장 몰아치지 아니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없는 완전한 정막에 휩싸이게 된 것일까? 이 완전한 정막은 무슨 의미인가? 이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 어떤 학자는 장차 임할 강력한 심판의 서곡으로, 또 어떤 학자는 영원한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 같은 것입니다.
3. 사실 모든 견해가 ‘예비시간이다. 준비시간이다.’라는 의미에서 다 일리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 완전한 정막, 고요함은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들리게 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가 아무리 미세할지라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듣고자 귀를 기울이시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의 시간,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귀 기울여 들으시는 이 시간은 오래도록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늘 대기하고 서 있는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곧 고요함의 시간은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지니고 있는 의미의 성취를 위한 예비시간인 셈입니다. 또한 일곱 천사의 일곱 나팔과 함께 펼쳐질 하나님의 엄위하신 일에 정막의 시간을 통하여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진다 하는 의미입니다. 곧 하나님의 일에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진다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복음적으로 밝혀 보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팔은 과연 어떤 때에 사용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나팔은 재앙과 멸망을 알리는 종교적 혹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스바냐서 1장 14-16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 큰 날이 가까이 달려오고 있다. 그 날에 울부짖는 소리가 매우 슬플 것이다. 군인들도 목놓아 울 것이다. 그 날은 진노의 날이 될 것이다. 재앙과 고통의 날, 파괴와 멸망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이 될 것이다. 나팔을 불어 경고하고 견고한 성읍을 공격하며 높은 망대를 공격하는 날이 될 것이다.”.........
둘째로, 나팔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사용될 도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31절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5. 진실로 그렇습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울릴 때, 그때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요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보는 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때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살아온 사단과 세상 사람들 곧, 육체로 살아온 마귀의 자녀들에 대한 재앙과 재난의 때인 것입니다. 그날에는 아무리 살고자 하여도 살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죽고자 하여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고통과 재앙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모두들 기절하듯 통곡을 하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결코 간단치 않은 이 땅의 삶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절대 소망의 삶, 흔들림 없는 절대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최고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최고의 이유는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소망으로 견고합니까? 분명, 그 어떤 환경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절대 믿음으로 굳건합니까? 일곱 천사의 일곱 나팔 곧 하나님의 나팔소리는 분명히 울려 퍼집니다. 그날은 우리성도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성취의 날이요. 우리 영혼을 향한 영광 날 입니다. 과연 그날을 준비하셨습니까? 과연 그날을 기다리십니까?
6. 이제 본문 3-4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이 말씀은 본문1절의 말씀과 연장선에 있는 말씀입니다. 곧 완전한 정막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죄악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는 삶, 무릎을 꿇는 기도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기도가 향기로 묶여집니다. 그리고 향기로 묶여진 성도들의 기도가 마치 연기처럼 하나님 앞으로 드려진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하늘에 속한 사람인 우리 성도는 한시도 기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로 부터 다시 잠자리에 눕기까지 기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성도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기도로 깊은지 잠을 자면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7. 기쁜 일이 있으면 감사의 기도를, 슬픈 일이 있으면 탄원의 기도를, 형통한 일이 있으면 기쁨의 기도로, 막히고 답답할 때는 소망의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시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또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형제자매 된 성도들을 위하여 성령의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시여!!!’ 그리고 마라나타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침을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오직 세상만을 높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피로 인침을 받은 우리성도는 기도가 곧 삶이요, 삶이 곧 기도가 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141:1-2)
8. 그런데 오늘본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께로 향기가 되어 올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얼마나 놀랍고 보배로운 말씀입니까?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되는 것은 훌륭한 언변으로 혹은 아름다운 언어로 드려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을 드렸기에 향기가 됩니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이기에 향기가 됩니다. 의로움으로 드리기에 향기가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요 기쁨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기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됩니다.
9. 마태복음 3장 17절과 요한복음 16장 23-24절 의 말씀입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유일의 통로요 하나님의 기쁨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시로 기도하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우리가, 골방의 기도자로 세워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 이제 우리함께 본문 5절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 보겠습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본문말씀은 이렇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으로 새로워진 거룩한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 담긴 금향로를 가지고 번제단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번제단에 있던 불을 금향로에 담아서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향으로 묶여진 거룩한 성도들의 기도와 제단의 불이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되어서 세상을 향하여 거침없이 쏟아져 내립니다.
곧 첫째 인으로부터 여섯째 인이 떼어지기까지도 회개하지 않고서 여전히 불의와 불법을 일삼으며 이 세상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심판의 광풍이 몰아치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셨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참으시고 참으셨는데도 여전히 반역하니까 하나님은 이제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11.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13:34) 아! 가련하다가련하다. 귀가 막히고 눈이 먼 사람들이여!!! 정녕 사랑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대들의 눈에는 정녕 알곡과 쭉정이가 갈리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는 엄위한 갈림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귀에는 들립니까? 사랑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말입니다. 정녕 우리들의 눈에는 보입니까? 그 엄위한 갈림길이 말입니다.
12. 그런데 우리가 본문 5절의 말씀 속에서 깨달아야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로 드려졌던 성도들의 그 보배로운 기도가 왜 번제단의 불과 합하여져서 세상을 향하여 재앙과 재난으로 쏟아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왜 그럴까요? 예수님으로 새로워진 우리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재앙과 재난이 가득 담긴 저주의 기도를 드렸기 때문일까요? ‘하나님! 저 완악한 세상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소서! 우리들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저런 불법의 사람들은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합니다.’ 라고 탄원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역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절대로 그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혼구원을 위해 긍휼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용서의 손길을 펴서 함께 더불어 천국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우리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렇게 행하여야 주님의 참 제자가 됩니다.
13. 그렇다면 성도들의 기도가 제단의 불과 합하여 세상을 향하여 쏟아져 내림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이 쏟아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쏟아지며 하나님의 진리가 쏟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즉,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요16:8) 말씀하셨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십자가의 번제 단에서 완전한 죽음을 당하셨던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자매여러분!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진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그 날에 그 불의와 불법을 완전히 불태우십니다. 일본을 불태우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공의를 사랑하며 살았던 성도들에게 하나님자신을 영생으로 성취하십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우리성도는 이 땅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을 팔아 영생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성도는 불의와 불법으로 순간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와 공의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