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몇 년 전 오늘본문이 속해있는 창세기 28장 1-19절과 마태복음 13장 10-17절의 말씀으로 “본즉 또 본즉”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언하였습니다. 오늘은 겹쳐지는 본문이기는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그때의 말씀을 기억하신다면 오늘의 말씀과 잘 비교하여 들으시면 더욱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 우리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빛날 때, 가장 영광스러울 때, 가장 복 될 때는 언제일까요? 이태리의 최고의 디자이너가 만든 하나밖에 없는 옷을 입을 때일까요? 세계최고의 프랑스 요리사가 만든 진귀한 음식을 먹을 때일까요? 또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최고의 자동차를 타고서 이리 저리 여행을 다닐 때일까요?.........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부러워하고 그러한 삶을 살고자 열심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의 빛남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혼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에 절대 빛이요, 영혼에 절대 능력이시며, 영혼에 절대 구원이신 예수님이 그 존재 안에 없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하여도 그 존재는 빛나지도, 영광스럽지도, 복되지도 않습니다.
* 그러기에 우리의 입술이 절대 빛이신 예수님을 노래하고, 우리의 마음이 절대 힘과 능력이신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그리고 우리의 삶이 절대 생명과 구원이신 예수님을 닮아갈 때 그는 가장 최고의 사람이요, 가장 빛나는 사람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들녘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자는 처지에 놓일지라도 변치 않습니다.
“아! 가장 최고의 사람! 가장 빛나는 사람!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 그대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예수님으로 충만합니까? 인생의 모든 꿈과 환상, 모든 계시와 능력, 모든 복과 은혜와 은사의 기초이시며 완성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더욱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받으시는 약속의 후사는 태어남의 순서가 아닌 믿음의 순서입니다. 에서는 비록 야훼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을 믿음의 가문,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잇는 가문에 장자로 태어났지만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는 (창26:34-35) 즉,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지 않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었기에 결코 약속의 후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롬8:8) 이에 반하여 야곱은 태어남의 순서상으로는 약속의 후사가 될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뒤를 이어 복의 사람이 되겠다는 침노하는 열망, 곧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의 전통을 잇는 약속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 이제 창세기 27장 28-29절에서 야곱이 약속의 후사로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축복받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이 얼마나 보배롭고 존귀하며 영광스러운 복의 인침입니까? 왕이 옥새를 찍으면 그곳에는 절대불변 절대 권위가 있듯이 그러한 복이 이제 야곱에게 찍혀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가로챌 수 없고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 아들이삭에게 유전되었고 이삭에게 유전된 하나님의 약속이 큰 아들 에서가 아닌 작은 아들 야곱에게로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뒤를 잇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복이 이제는 여러분과 저의 가운데 강수처럼 흘러넘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드디어 야곱은 자신의 열망대로 장자의 명분을 얻고 장자에게 기름 붓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큰 기쁨가운데 차근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만 받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장 41절에서 증언합니다.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에서의 분노가 하늘에 까지 닿은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묘히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도 부족하여 이번에는 야곱이 에서자신으로 변장하여 아버지의 손을 통하여 하늘로부터 임하는 자신이 받아야할 축복을 가로채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최고의 도둑질을 당하였으니 살기가득한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 약속의 후사를 잇는 복을 두고서 벌이는 에서와 야곱, 야곱과 에서의 보이는 전쟁과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승자는 누가 되며 패자는 누가 될 것입니까? 만일 야곱이 승자가 된다면 그 승리의 절대적 요인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야곱! 당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비밀을 알려주시오”
* 에서의 살기 가득한 분노를 알아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고향인 밧단 아람의 라반의 집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라반은 리브가의 오라버니로서 야곱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형의 살기를 피하여 밧단 아람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밧단 아람의 라반에게 가는 길은 즐겁고 평안한 여행길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복을 가로채고서 달아나는 도망 길이었습니다. 결코 마음 편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열려질까에 대한 심한 근심과 걱정에 짓눌렸을 것입니다. “이제 도대체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형에게 너무 했나? 밧단 아람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까? 혹시 그곳까지 형이 쫒아오는 것은 아닐까? 내일은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야곱이 끊임없이 이러한 걱정과 근심의 길을 걷고 있는 동안 어느 한 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자신의 집, 브엘세바에서 약 85km 정도 떨어진 루스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의 청년이었던 야곱이 삼일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이 걸어온 85km 의 거리는 단순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길은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얽기고 섥힌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곁을 떠난 불안한 길이었습니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나그네 길이었습니다. 더불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복이 자신에게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수놓아진 길이었습니다. “아! 인생이여! 인생이여! 그대는 나그네로라. 나그네로라! 그대는 그 나그네 길에서 누구를 무엇을 중심에 세우고 나아가는가?”
* 이제 야곱은 루스라는 곳에서 그 피곤한 육체, 곤고한 마음을 눕힙니다. 그러나 그가 누운 몸 자리, 그가 펼쳐놓은 마음자리는 안락한 침상이 아닌 돌을 베고 자야하는 거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유업으로 받을 약속의 후사가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유산으로 받을 사람이라면 포 시즌호텔........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아니어도 적어도 네 개 세 개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맨 땅에 돌 베게라니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힘써 약속의 후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약속의 후사에서 밀려난 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아버지로부터 물질적인 유산을 가득차지하고 안락한 집에서 좋은 음식에 편안한 잠을 자는데 말입니다.
과연 누가 진정한 장자입니까? 과연 누가 진정한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까? 등에 겨우 몇 날 먹을 양식만 지고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염려와 불안을 가득품은 채 돌을 베고 처량한 잠을 자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래도 진정 야곱이 약속의 후사요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 오늘 신약의 본문 16-1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약속의 후사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복의 계승자입니까? 하나님 없이 제 욕심대로 살아 부요한 듯 보이는 세상 사람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들입니까? 오늘 나는 누구입니까? 십자가 없는 세상 사람입니까? 십자가 가득 짊어지고 가는 성도입니까?
* 야곱이 피곤한 몸과 곤고한 마음을 눕혀 놓고 잠든 사이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꾼 꿈은 일반적인 꿈, 속된 말로 개꿈이 아니었습니다. 전능자의 계시가 담기고 전능자의 현현을 나타내는 신비한 꿈이었습니다.(민 12:6 :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을 하기도 하거니와) 오늘 본문 12-15절에서 야곱이 꾸었던 꿈을 다시 보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 전능자의 임재여! 아! 야훼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여! 그분을 만난 자가 복이 있으리. 그분의 언약을 받은 자가 빛나리.”
* 그렇습니다. 나그네가 되어 정처 없는 길에 나선 야곱의 꿈에 나타난 존재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현현하셨고 언약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영광의 하나님이 이제 친히 그에게 나타나셔서 거듭 약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자께서 야곱에게 꿈으로 현현하신 장면 속에서 집중해서 보아야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12-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본즉, 또 본즉, 또 본즉” 이라는 단어입니다. 야곱이 세 번을 거듭해서 선명하게 본 것은 이것입니다. 첫째는 사닥다리가 땅에서 부터 하늘에까지 닿은 것이었고 둘째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었습니다.
* 도망자 신세가 되어 외롭고 고단한 길, 곤고하고 삭막한 길에 서 있던 야곱이 말로만 들었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걸음걸음 자신을 돌보고 계신다는 것과, 수많은 천사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하늘과 땅을 분주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과, 사람이 감히 전능하신 분과 교통할 수 있다는 영광스런 임재 앞에서 야곱의 그 마음 그 영혼은 어떠했을까요? 기쁨과 확신, 설렘과 소망을 넘어서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품는 경외함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아! 영광의 하나님이여! 거친 길에 서있는 종에게도 임하소서!!! 그 영광으로 십자가 지고 가는 우리에게도 임재하소서!!! 그리하시며 고난 길에서도 찬송하며, 그리하시면 보이지 않는 길에서도 소망으로 충만하리이다.”
* 이제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함!” 그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게 된 야곱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나님의 문이로다.” 그렇습니다. 흙의 사람이 영광의 하나님을 뵈옵는 그곳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육체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 소망으로 충만한 그곳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소가 됩니다. (고전3:16) 그리고 나그네로 살다가 버림받아야 할 죄인이 예수그리스도로 구속함을 받으면 그는 하늘의 문을 열고 들어가 영생의 영광을 누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후사가 된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것을 이 땅에서도 열매 맺는 축복받은 사람인 것을 확신하십니까? (또 이르시되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요1:51) 또한 여러분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삶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도움을 입을 친밀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로마서의 본문 14-15절에서 증언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야곱의 꿈이 실로 귀합니다. 그는 그 꿈으로 하나님의 상속자로써의 영광스런 인침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상속자로 부름 받은 우리성도는 어떤 꿈을 꾸어야겠습니까? 무엇으로 인침을 받아야겠습니까? 우리성도에게는 야곱의 꿈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확증된 약속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 확증된 약속은 야곱처럼 곤고한 나그네 길에 처한 인생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영광의 언약은 모든 근심과 걱정, 탄식과 절망을 가득 짊어지고 살다가 마침내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될 인생을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상속자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충만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성취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