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사 웰스(Genessa Wells)는 대학을 졸업한 후 세상의 눈으로 보면 남부럽지 않은 조건과 가능성을 가지고 세상에 막 나온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제네사는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길로 가지 않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중동의 한 나라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을 길로 자청해서 간 것입니다. 떠나기 전 그녀는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해외로 가는 것을 단념하고 결혼을 하여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평온하게 살 수도 있었어. 그것 역시 무척 고상하고 소박하고 멋진 일이지. 하지만 복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어. 그것이 남편이나 편안한 생활을 바라는 마음보다 더 간절했다고 할까.........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인 것 같아!”
* 한 동안 제네사는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요르단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난민촌에서, 프랑스의 무슬림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사막의 베두인족 사이에서 주님의 복음을 들고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다시 썼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데 말고는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아. 주님은 상상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분이야!” 이렇게 편지를 쓴 후 여섯 달 뒤 제네사는 그녀의 마지막 메일에서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드러내야할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뿐이야. 그런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어.” 이렇게 편지를 쓴 두 주 후, 제네사 웰스는 이집트 시나이 사막 한 복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버스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David Platt의 래디컬에서 편집)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이 젊은 청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주받은 삶이었습니까? 복을 받은 삶이었습니까? 어리석은 죽음입니까? 행복한 죽음입니까? 그녀의 삶을 이렇게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오늘 여러분의 삶은 무엇을 결실하기 위한 삶입니까? 우리는 어떠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오늘의 여러분의 삶을 이끄는 힘은 무엇입니까?
* 우리는 지난주일 “그리스도의 계시와 삶” 이라는 제목으로 계시란 무엇이며 우리 인생과 세상의 모든 것은 예수 안에서 풀어지고 밝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알고 세상을 알며 하나님을 깨달으려면 오직 진리와 생명과 사랑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여야 한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오늘의 나의 신앙 고백은 무엇인가? 진실로 사도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신앙이 있는가? 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모든 주제가 중요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매일의 삶 속에서 새롭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같은 본문을 가지고 함께 고민하고 성취해 가야할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서 “반드시 속히 될 일들” 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이 말씀을 다른 번역본의 성경에서는 “반드시 곧 일어날 것들, 반드시 아주 속히 일어날 것들, 이제 아주 속히 일어날 것들”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뜻은 반드시 일어날 일, 결코 피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나태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취하여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 완성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도 요한이 이 계시의 말씀을 받아서 기록하고 무려 이천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 “반드시! 곧! 속히! 일어나겠다.” 하신 이 계시의 말씀이 왜 아직도 성취되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러 어떤 사람들은 의심을 품습니다. “사도요한이 잘 못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허구다. 왜 아직 예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 정말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셔서 나타내주신 틀림없는 ‘하나님의 계시’ 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의 말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역사가운데서 차근차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도요한이 하나님의 계시가 “속히 일어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사야 (13:6,19:1,21:16), 에스겔, 다니엘 등 구약의 예언서들에서 사용된 전형적인 용법을 사도요한도 ‘시간의 긴박성의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시간의 긴박성”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처럼 “속히, 곧” 이라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삶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 우리가 잘 알듯이 우리 사람의 시간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70세 80세 그리고 오늘날에는 90세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무리 길게 살았어도 또한 아무리 부유하게 살았어도 마치 어제 일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여러분이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마치 어제일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생을 ‘한바탕 봄날의 꿈’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비유합니다. 전능자의 심판아래 놓여있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보면 인간의 하루하루, 시간 시간이 곧 닥칠 긴박한 종말이요 곧 임하게 될 마지막 시간인 것입니다.
* 따라서 오늘우리는 많이 남은 날들 중에서 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주어진 하루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배롭습니까? 이 시간의 개념을 깨달으면 사람들의 삶은 분명히 허탄한 데서 돌이켜 제네사 웰스(Genessa Wells)처럼 전능자의 영광을 위하여 삶을 헌신 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가운데 죽음과 먼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인생들 가운데 죽음과 담을 쳐 놓고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러기에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사건들은 시시각각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지막 시간을 향하여 긴박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은 곧 임하게 될, 어쩌면 한 시간 후, 하루 후에 맞이하게 될 종말의 시간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그 시간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만일 준비되지 못한 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 자신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실로 가깝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시간이 문전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무엇에 가깝습니까? “아! 삶이여! 죽음이여! 마라나타!!!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을 함께 생각 볼 차례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께서 요한 계시록의 말씀가운데서 제시하신 복이 일곱 가지인데 그중의 처음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무슨 의미일까요? 무엇이 복이라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복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계시록에서 제시하신 나머지 여섯 가지의 복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합니다.
* 그것은 이렇습니다. 둘째 복,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14:13) 셋째 복,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 넷째 복,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19:9) 다섯째 복,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6) 여섯째 복,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 일곱째 복,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22:14)
* 사랑하는 여러분!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복이란 어떤 것입니까? 지금도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사람들을 향해 주시고자 하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항상 종말을 안고 사는 우리사람에게 주시는 복이란 돈과 물질, 명예와 권세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으로 새로워지는 삶입니다. 바로 하나님나라에 합당하게 변화되어가는 영혼입니다.
*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각자의 삶과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하루 24시간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기억하며 묵상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말씀을 삶의 자리에서 얼마나 풀어내고 있습니까?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사람들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뉴스와 잡지, 연속극과 영화,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이 어른으로부터 이제 막 돐을 지낸 아이들까지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그 작은 기계 속에 빠져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만들어 내는 가짜 세상. 사단이 이끌어가는 육체의 즐거움을 보느라 모든 시간을 다 소모해 버리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삶은 도대체 어디로 가겠습니까?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 시대의 운명은 과연 어찌 되겠습니까?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딤후2:26) 이러한 은혜가 우리뿐만 아니라 이 시대와 사람들 사이에서 강수가 되어 흘러야 할 텐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흙덩어리인 우리가 읽고 듣고 행하여야할 말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신11: 18-20) 무슨 의미 입니까? 하루아침의 처음 시작부터 잠자리에 이르는 시간까지 오직 말씀과 함께 동행 하라!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 속에서도 오직 말씀과 함께 살라! 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삶의 면류관으로 주신 자녀들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도록 부지런히, 쉼 없이, 힘써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며(시19:8) 우리로 하나님께 범죄치 않게 하며(시119:11) 그 속에서 지혜의 빛이 나와서 우둔한 사람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시119:130)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해서 영혼을 소성시키며(시19:7),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며(엡5:26)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음의 뜻과 생각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히4:1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선한 일을 하게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며(딤후3:17) 우리로 영원토록 존재케 하는 새 생명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벧전1:23)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돌아가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던”( 창11:1) 하나님의 친교와 나눔과 사랑으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매 순간 종말을 향하여 치닫는 우리가 과연 이런 힘과 능력, 생명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 내 마음과 뜻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한 그토록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온 맘과 뜻을 다하여 힘써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인 성경 66권, 1189장에서는 죽음의 사람을 생명의 사람으로, 옛사람을 새 사람으로, 멸망의 사람을 영생의 사람으로 이끄는 하늘의 보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보화는 잠시잠깐이요, 그것이 이끄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가르치는 일에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생활의 현장에서 열매 맺도록 땀 흘려 수고해야만 합니다.
* 덴마크의 철학자요 신학자였던 키에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는 성경읽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기위해서는 사람의 입에서 발끝까지 하나님과의 대화를 열망하며 진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부주의하게 무의식적으로 또는 학적이나 직업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사랑의 편지(love letter)로 읽을 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사랑의 편지!!! 곧 마음으로 영으로 제대로 읽고 제대로 들으면 반드시 제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전심을 다하여 읽고 들으면 삶과 말씀의 일치가 이루어져서 그 삶에서 하나님이 보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읽혀지고 들려지고 보여 지는 삶!!! 그것은 오직 우리가 예언의 말씀을 전심으로 읽고 듣고 행할 때 결실하게 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연합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성취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은 오늘도 긴박한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