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보물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최고의 노래는 무슨 노래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힘 있게 권면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 할지어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노래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노래합니까? 그리고 노래하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노래하고 있습니까? 사람에게 있어서의 영혼구원은 절대적입니다. 가장 큰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영혼에게서의 새 노래는 영광의 사명입니다.
* “예측불허”(Entropy)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치 앞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단어이고 일상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깨달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이라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측불허” 라는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용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측불허” 는 오늘날 인류가 처해있는 가장 긴박한 현실인 것입니다.
엊그제 (2013년 11월 8일) 필리핀에서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이라는 ‘하이옌’이 몰아닥쳤습니다. 최대 풍속은 314km/h이고, 순간 최대 풍속은 무려 379km/h입니다. 이에 대해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우리는 재앙에 직면했습니다.” 손을 쓸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의 보고대로 강력한 태풍으로 인하여 비행기가 결항되고,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무려 1300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포의 도가니에서 떨어야했고 이미 11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최소 1.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함께 생각을 해 볼까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서의 자연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섬기는 역할에서 공포를 지나 이제는 심판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필리핀 뿐 아니라 온 세계가 기상이변으로 예측불허의 상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슈퍼태풍이 올 때마다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지진이 일어 날 때마다 수만 혹은 수십만의 건물이 붕괴되는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겠습니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고 예측불허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힘써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육체입니까? 여전히 물질이요 이 땅의 것입니까?
* 과연 우리들의 삶에 ‘안전하다 확실하다.’ 고 보장받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생명을 보장 받았습니까? 80년 100년 살 수 있을까요? 힘써 장만한 집은 어떻습니까? 지진에도 보장 받았습니까? 직장은 어떨까요? 사업은 어떨까요? 또한 자녀의 미래는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리고 건강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전혀 보장 받은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절대적 보장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예측불허인 우리인생에게 구원이요,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그분을 통하여 삶을 보장을 받습니다. 따라서 실로 우리에게 참깨달음이 있다면 오직 그리스도를 추구해야 합니다. 실로 우리에게 참지혜가 있다면 예수그리스도로 우리를 보장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온 삶을 다해 날마다 새롭게 노래해야 합니다. 새 노래는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영광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주 화요사역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목상태가 참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영에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의 일들로 집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한 마음으로 양식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양식을 다 나누었는데 평소 한국식인사와 거수경례를 건네던 노숙인이 오더니 “벌써 다 나눠 줬습니까 남은 것이 전혀 없습니까?” 하며 아쉬움을 토하고 금세 사라져 버렸습니다. 복잡했던 서부역은 이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늦은 퇴근을 하는 사람들만 다니는 한산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역을 마감하며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고 났더니 조금 전 양식을 못 먹고 금세 사라져버렸던 노숙인이 저의 면전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노숙인과 함께 제 앞에서 함께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를 데리고 빵집으로 갔습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55세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신사가 다가왔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영어할 줄 아십니까? 당신은 어찌해서 헝가리에까지 와서 이러한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헝가리에서 이런 일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왜 하필 우리나라입니까? 나는 군인으로 미국에서 12년을 지냈습니다. 외국에서 사는 일이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 “사연이 깁니다.” 그러는 사이 차례가 되어 빵을 사서 노숙인의 손에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헝가리에 오게 된 이유를 간략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삶과 영의 삶에 대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그 거리에서도 무척 진지해졌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불행스럽게도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당신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물론 당신의 그 노래는 나의 영혼을 터치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그런 그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정말 우리의 육체는 쉬 사라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체를 위하는 일에 그 삶을 몰두합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값진 것들을 사고........과연 남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는 사이 청년의 때를 지나는 그의 아들이 와서 그의 곁에 섰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그토록 힘쓰는 일들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결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영혼이 얼마나 존귀할까요........” 그러는 사이 그의 눈에서는 참으로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연 무엇이 그 건장한 중년의 신사의 맘을 건드렸을까요? 과연 누가 평소 가족에게 그리고 아들에게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아들이 바로 곁에 서있음에도 굵은 눈물을 그토록 흘리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영이 그 시간 그의 마음을 여셨고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형제자매여러분! 과연 우리인생에게 하나님의 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영혼이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구원의 영이요 우리들의 영혼은 매 순간 전능자의 구원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구원 얻은 영혼의 존귀함” 그 가치를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골든 쥬빌리:1985년 발견: 545.67캐럿)와 비교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력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의 권력, 영국여왕의 권력, 교황의 권력을 다 모으면 될까요?)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무엇하나라도 더 소유하려고 몸부림치는 우리사람의 육체는 날로 날로 마르고 쇠하여져 갑니다. 젊음도 꺾이고, 건강도 꺾이고 그리고 마지막엔 생명도 꺾여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흙으로 돌아가 버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육체에 (- 더 이상 육체로 불리수도 없겠지요. -죽은 육체...시체에게) 가장 큰 다이아몬드, 가장 높은 권력 그리고 세상의 전부가 쥐어져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 그러나 영혼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전능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하늘의 삶을 보장받은 “구원 얻은 영혼의 존귀함의 가치”는 보배중의 보배 그 이상이요, 최고중의 최고 그 이상이 됩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20:4) 그렇습니다. ‘새 노래’ 란 최고 그 이상의 것을 소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새 노래’ 란 사람의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구원 얻은 영혼의 존귀함의 가치” 를 삶에 담아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 저는 이쯤에서 “세상 그 누구도 그보다 더 경건한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을 들었던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년 ~ 1471년 7월 25일) 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에 나오는 영생에 대한 글을 잠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 만일 네가 하늘에서 성도들의 영원한 면류관을 보기만 할 수 있다면, 또 이전에 이 세상에서는 경멸받아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얼마나 많은 영광 가운데 기뻐하는지를 볼 수만 있다면, 너는 이내 땅바닥에 전적으로 부복할 정도로 겸손하게 될 것이며, 어떤 사람의 윗자리에 앉기보다는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종속되기를 바랄 것이다.
또한 이 삶에서 기쁜 나날을 갈망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주님을 위해 더욱 고난당하기를 기뻐할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로 간주됨을 가장 큰 이득으로 생각할 것이다. 오, 만일 이것이 네 마음에 들고 네 폐부를 찌르기만 한다면, 어떻게 네가 감히 한번이라도 탄식할 수 있겠느냐. 영생을 위해 모든 수고를 참아야 할 것이 아니냐. 하나님 나라를 잃거나 얻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네 얼굴을 하늘로 향하여 들어라, 보아라, 내 모든 거룩한 자들이 나와 함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큰 싸움을 치렀던 자들이다. 그들은 이제 즐거움과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푹 놓고 안식하고, 나와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임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구원받은 영혼의 존귀함의 가치”를 최고의 감사로 노래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뻐 춤추며 매순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없는 가장 큰 보배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는 구원을 그 영혼에 입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여러분이 지난주의 설교를 분명히 기억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제목은 “잃은 사람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의 삶에 쏟아져 내린 구원의 일에 대한 본문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세상과 함께하는 잃는 삶을 살다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얻는 삶을 살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게 된 그의 영혼은 춤출 듯이 기뻤습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19:6) 뿐만 아니라 그는 기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아니하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파격적인 반응을 합니다.
누가복음19장 8절의 말씀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과가 드러나면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또한 회개한다하여도 그 이전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그 시점부터만 바르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과를 분명히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 토색한 것에 대해서 율법에 따라 분명하게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와 같은 삭개오의 행위는 “이제는 이 땅의 삶이 아닌 영원을 위한 삶으로 살겠습니다. 육체가 아닌 영혼을 위한 삶으로 자신을 드리겠습니다.” 라는 확고한 의지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한 고백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란 이전까지 살던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는 것이 아닌 삶의 방향을 완전하게 바꾸는 실천적인 행위가 있어야만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적인 회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됩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는 삶으로 새 노래를 불렀던 사람인 것입니다.
* 다음주일은 우리가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추수감사주일로 드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2013년,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시겠습니까? 본문8-9절에서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보배로운 선물인 구원받은 영혼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삭개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감사를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색하거나, 재거나, 따져하는 인간의 감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드리는 감사는 가장아름답고 가장 거룩한 예물로 드리는 영의 감사입니다. 이러한 영의 감사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2013년의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새 노래로 노래하라.”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구원받은 영혼을 입은 사람들의 영광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