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온 마음과 몸과 영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 위에 더욱 풍성한 감사의 제목들로 충만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의 메시지를 통하여 세 가지의 주제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첫째로는 계절의 추수와 삶의 추수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봄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추수의 계절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섰습니다. 참으로 세월이 빠릅니다. 인생에도 추수의 시간이 올 텐데 우리는 과연 그날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오늘 이 강단에는 여러분들이 기도하며 마음을 다해 준비한 갖가지 과일들과 채소들이 놓여있습니다. 저는 이런 탐스러운 것들을 보면 시편104편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너무도 분명하고 생생하게 표현한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아름답고 복된 추수의 계절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여러분은 이 강단에 놓여있는 과일들과 채소들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십니까? ‘탐스럽다. 풍성하다. 예쁘다. 풍요롭다. 감사하다.’ 분명, 여러분은 이러한 생각들을 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추수의 계절과 그 결실이 우리의 심령에 가져다주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움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들이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에서 멈추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계절의 추수 때’ 가 아닌 ‘인생의 추수, 삶의 거둠’ 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간이 다르지만 예외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놓이게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둠을 당한 우리의 영혼이 전능자의 존전에 놓이게 될 때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 여기에 놓인 과일과 채소들을 보고 우리의 눈이 ‘예쁘다. 탐스럽다.’ 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눈도 거둠을 당한 곧 삶의 추수가 끝난 우리의 영혼을 보시고 분명히 말씀 하실 것입니다. “보배로운 영혼이여! 존귀한 영혼이여! 빛나는 영혼이여! 아름다운 영혼이여!”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칭찬을 듣는 영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가운데 오셨고 우리들의 죄악을 지시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전능자의 눈에 비친 우리의 영혼이 ‘부끄러운 영혼, 합당치 않은 영혼, 버림받은 영혼, 때 묻은 영혼’ 이라는 판단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비극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영혼이 보배롭고, 존귀하며, 빛나고, 아름다운 영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영광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제는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초막절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백성,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지켜야할 3대 절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무교절이 그 첫째 절기입니다. 그리고 한해의 첫 농사인 봄 농사를 여름에 거두어 수확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맥추절, 곧 칠칠절이 그 둘째 절기입니다. 그리고 한해의 모든 추수를 마치고 그 수확물을 창고에 저장한 후에 감사제를 드리는 초막절이 그 셋째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이유는 가을 추수를 위하여 포도밭에 초막을 지은 것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곡식이 창고에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막절을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던 때를 기억하기 위하여 7일 동안 장막을 짓고서 이 절기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초막절에는 세 가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첫째로는 추수한 곡식중 제일 좋은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로는 이 절기를 맞이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부채, 빚을 청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늘 성결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로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이 절기를 즐거워하며 기쁨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 절기를 맞이하면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으로 진정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의 삶은 세상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성결함으로 가꾸어져 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는가? 장차 하나님 앞에 놓여 질 탐스럽고 아름다운 영혼들은 바로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며, 내면으로는 자신을 성결이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제는 세 번째 주제인 범사에 감사함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범사’ 라는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범사’의 또 다른 말은 ‘언제든지’ 혹은 ‘항상’ 입니다. 그러니까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라는 말씀은 ‘조건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그리고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라’ 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늘 깨닫는 것처럼 조건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일이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항상 감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들은 늘 조건과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조건이나 환경이 자신의 뜻과 계획에 어긋나면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포기합니다. 절망합니다. 탄식합니다. 화를 냅니다. 그것이 이 땅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자화상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삶의 태도 말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절대적으로 놓치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평과 원망, 포기와 절망 그리고 분냄과 탄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마귀의 것이요, 영적인 것이 아닌 육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고 권면한 이유는 감사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단에게 예속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스피로스 J. 히아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귀를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냐? 마귀의 종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택함 받은 우리가 아버지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해야 할 절대적 조건을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오늘본문에서 분명하게 적시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왜 예수그리스도인가? 예수그리스도는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풍성할 때나 부족할 때나’ 하는 이 땅의 모든 조건을 충분히 넘어서는 유일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건을 충분히 넘어서는 유일의 조건이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보배요, 영광의 보배인 영혼구원을 우리 가운데 실현시켜 주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영혼!!!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보배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유일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박국 선지자의 메시지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3:17-18) 가난도 나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로 통과시키고, 고난도 예수그리스도로 제련시키고, 실패도 예수그리스도로 통과시키면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구원받은 여러분의 영혼을 그 무엇에 비교하며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 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부를 영원한 노래인 것입니다.
* 우리는 믿음에 대해 듣습니다. 그리고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한 믿음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중심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따라서 큰 믿음의 사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삶의 중심에 선명하게 세워져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삶의 중심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명하게 세워지면 세워질수록 그는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감사의 정도가 곧 그 한 사람의 믿음의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감사, 감사와 믿음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지요.
* 뜨거운 믿음의 사람일수록 뜨거운 감사를, 충만한 믿음의 사람일수록 넘치는 감사를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볼까요? 오늘 우리의 삶에는 감사가 넘칩니까? 아니면 불평과 원망이 넘칩니까? 감사가 넘친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소득이 많아서? 명품을 많이 소유해서? 넓은 집에 살아서? 결코 아닙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손에 들려진 소유 때문이 아니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영혼의 샘에서만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영혼의 샘은 예수그리스도로만 넘치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7:37-38)
*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는 유일의 절대적 조건입니다. 그러한 절대적 힘이신 그리스도가 내 영혼에 넘치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과 탄식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기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면 믿음지수는 높아지고 믿음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감사지수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라고 했습니다. 과연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 “범사에 감사” 이 빛나는 삶의 유일의 비결은 그 심령을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충만케 하는 것입니다.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