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강절을 맞이하며 만유의 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더 깊은 마음으로 사모하며 기다리시는 여러분 모두 위에 하나님의 은혜위에 은혜가 더욱 새롭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리며 오늘의 증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최고의 날,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 올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인생의 최고의 날! 나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날! 이 밤 지나면 올까요? 아니면 일 년쯤 지나면 그날을 차지하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수고하고 땀 흘리면 십년 뒤엔 그 날을 맞이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은 사람들인 우리 성도들은 인생최고의 날, 가장 행복한 날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인생최고의 날, 가장 행복한 날은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로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삶을, 최고의 삶을, 행복한 삶을 매 순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성도는 최고의 날, 가장행복한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그 날을 더욱 확장해 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가장 영광이시 분!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의 목자가 되셔서 항상 함께 하시는데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그날이 당연히 최고의 날이요,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차지한 인생최고의 날, 가장 행복한 날을 더욱 크고 넓고 견고하고 아름답게 확장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로 우리의 삶이 마중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길로 마중 나가는 삶과 인생!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렵고 가슴 벅차지 않습니까? 마중나선 길에선..........다시 오시는 주님을 마주대할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영광이요! 영광이요! 또 영광입니다. 요한계시록1장 7절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길로 마중 나가는 삶과 인생! 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랑과 섬김이지 않겠습니까? 충성과 헌신이지 않을까요? 겸손과 인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최고의 날, 가장 행복한 날들의 확장은 바로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것들로 풍성하게 열매 맺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 두벌 옷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헐벗은 사람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는 사람으로 주신 최고의 날을 더욱 크게 확장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물건을 탈취하지 말며, 거짓으로 이웃을 고발하지 말며, 있는 바를 감사하게 여기는 삶으로 가장행복한 날을 더욱 견고히 확장해가야 합니다.(눅3장)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받은 인생최고의 날, 가장 행복한 날을 얼마나 확장해가고 있습니까? 혹, 그리스도로 주신 날보다 다른 날은 기다리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로 맞이하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삶이 최고의 날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밖에서의 날은 다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 채의숭장로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현재 화양감리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대의그룹이라는 6개 계열회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세계평화의 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요즘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193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가 살던 곳은 오지중의 오지였습니다. 얼마나 오지였는지 그곳 마을의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는 학업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채 장로님의 부모님은 자신의 6남매가 이러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심히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도 중에 살던 곳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가족은 꼬박 사흘 길을 걸어서 어느 한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그의 부친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늘로 던지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지팡이의 끝을 따라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미련 없이 따르겠습니다.” 지팡이의 끝이 가르친 곳은 충남 대천이었습니다. 교회 앞에 집을 마련한 그의 가족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더욱 충만하게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 모든 일을 교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 채의숭장로님의 모친은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6남매에게 늘 신앙으로 교육하기를 힘썼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핵심으로 가르친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주일을 반드시 성수하라. 가능하면 본 교회에서 주일을 지켜야한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는 맨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면 약속하신대로 분명히 물질의 복을 받는다. 농사를 짓더라도 수확의 십일조를 철저히 드려라. 셋째, 목사님께 순종하고 교인들과 화목하여라. 또 너의 달란트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 특히 주의 종에게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채 장로님은 이러한 어머님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까지 겸손으로 철저히 신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주일 성수는 물론이고, 십일조는 물론이고 십의 삼조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종들에게 늘 최고의 마음으로 섬기며 순종하기로 소문난 분이 되었습니다.
* 이분에게는 세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목사님의 “크리스천은 큰 꿈을 가져야 한다.”는 설교를 듣는 중에 품게 된 꿈이었습니다. 첫 번째의 꿈은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꿈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기업의 사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백 개의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품은 꿈은 그의 고백처럼 현실성이 전혀 없는 허황된 꿈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로 도전하고 말씀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적같이 그 꿈들을 이루어주셨습니다.
* 대천 농고를 졸업한 후 그는 건국대학으로 진학하였고 졸업하면서 삼성그룹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첫 월급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당시 화양감리교회에서 최고로 십일조를 많이 내던 장로님보다 더 많이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 십의삼조를 드리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는 그만큼 하나님을 향해서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성에서 6개월여 근무했을 무렵 그는 대우그룹으로부터 특별 스카웃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정을 받아 대우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그의 꿈 한 가지가 성취된 것입니다. 그는 늘 바쁜 중에서도 주님의 일에 절대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중. 고등부. 청년부. 성가대등 교회의 모든 일에 충성과 헌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는 늘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시잖아요? 제 세 가지의 꿈!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제 꿈을 이루어 주십시오.” 그는 사장의 일을 보면서 또 다시 건국대학에서 공부하여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부터 대학의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꿈 하나가 성취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꿈인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 사장으로서 월급은 많이 받았지만 그 월급으로는 일생동안 100개의 교회와 학교를 건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정된 대우 아메리카의 사장직을 뒤로 하고 대의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100개의 교회를 봉헌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밀려들고 또 밀려들었습니다. 1985년엔, 전 재산을 쏟아 만든 부천 공장이 홍수로 다 떠내려갔습니다. 망연자실! 하나님 앞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1991년엔,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던 회사가 태풍과 함께 화재가 발생하여 모두 전소되었습니다. 또 망연자실!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2006년엔, 원인 불명의 불량품이 발생하여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그동안 쌓았던 신뢰가 송두리째 뽑히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채의숭장로님은 그러한 고난 앞에서도 여전히 100곳의 교회건축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의 꿈을 아시잖아요? 100개의 교회를 봉헌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의 믿음을 보셨고 오늘까지 99개의 교회와 학교를 아시아,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지역에 세우도록 그의 기업에 복에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늘을 상속 받게 될 우리성도에게 최고의 날은 이미 와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그날을 더욱 값지고 보배롭게 확장하며 가꾸어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 오늘 본문 3절에서 말씀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과연 누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광야 같은 땅에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할 것입니까? 과연 무엇으로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주께서 다시 오실 길을 평탄하게 할 것입니까? 그리스도로 최고의 삶을 누리게 된 우리들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며 평탄하게 하는 일에 이 삶을 드리면 어떨까요? 광야이기 때문에 일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막이기 때문에 수고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나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입니까? 오늘 우리들의 그 땀방울과 수고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 하나님의 임재! 그 영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흑인도 백인도 아시아인도,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임재!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임재의 실제적인 영광은 누구에게나 열려지지 않습니다. 오직 그 자신의 죄와 허물을 진실로 회개하며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자(마3:8: 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헌신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내주하심,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광과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그릇엔 그 어떤 것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불결한 것이 담겨있는 그릇에는 결코 고귀한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가장 존귀하신 분! 가장 영화로우신 분! 왕 중의 왕이신 분! 예수그리스도를 담기에 합당합니까? 혹 우리가 이기와 탐욕으로 구부러져있고, 거짓과 불의로 솟아올라 있으며,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그토록 땀 흘리는 것은 아닙니까? 완전히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임재하십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광을 체험하게 됩니다.
* 마른 땅은 흡족한 비를 기다립니다. 파수군은 찬란하게 동터오는 새벽을 기다립니다. 혹한의 겨울은 무엇을 기다립니까? 온화한 새봄을 기다립니다. 단장한 신부는 누구를 기다립니까? 신실한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죄 중에 태어나서 죄 중에 살아가며 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될 운명에 놓인 우리 사람들은 누구를 기다려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모든 죄로부터 자유를 주시며,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여 주시려고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완전하신 분, 광야에서 꽃을 피우시며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도 성령 안에서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기 때문이며 구름타고 다시 오실 재림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이유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분이 다시 오십니다. 오시는 주님을 향해 마중 나가야되지 않겠습니까?
*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란 다시 오실 주님을 마중 나가는 삶입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향해 마중 나가는 삶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주신 최고의 삶을 세례요한처럼, 사도바울처럼, 사도베드로처럼, 스데반처럼, 채의숭장로님처럼 그 삶의 자리에서 사랑과 섬김, 충성과 헌신, 겸손과 인내 등 하나님의 것들로 더욱 견고하고 아름답게 확장해가는 신앙입니다. 주님은 그 길로 다시 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