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믿는 자의 본이 된 교회, 믿는 자의 본이 된 삶으로 오늘날의 그리스도 전 지역인 마게도냐와 아가야지역 그리고 먼저 믿은 자들에게 도전이 되었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는 자의 본이 된 교회‘ 가 된 이유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였습니다.(살전1:3)
* 지난주에는 그 첫 번째로 “믿음의 역사” 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믿음의 역사인가? 그것은 “복음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받으며, 들은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함에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이 믿음의 역사다.” 라고 저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과 1장 6절의 말씀을 근거로 증언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에 대하여 말씀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과연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어떤 사랑의 수고를 하였기에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을까? 또한 과연 사랑의 수고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사랑의 수고” 라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참된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습니다. 죄 가운데 있던 우리 사람은 마른우물, 죽은 우물이었습니다. 그 자신으로 부터는 그 어떤 선한 것을 나타낼 수없는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죽은 심령에 생명인 복음이 임하고 믿음이 부어지면 선한 것들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의 수고에는 떼려야 뗄 수없는 절대적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일수록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깊은 믿음의 사람일수록 깊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뜨거운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됩니다. 믿음이 그 삶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끌어가고 사랑의 삶은 그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열매 맺는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과연 진실한 사랑, 깊은 사랑, 뜨거운 사랑입니까? 그것이 그 자신의 믿음입니다.
*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성도들을 넘어서는 교회로 소문이 났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실제적인 삶의 행위가 선명하고 특별했음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9-10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이라 일컫는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삶으로 보여주고 말씀으로 가르쳐준(살전3:12) 믿음의 실제인 사랑을 온전히 실행하였습니다.
* 그들의 사랑의 수고는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이라” 고 기록한 것처럼 인색한 사랑이 아닌 넘쳐흐르는 사랑, 미지근한 사랑이 아닌 뜨거운 사랑,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헌신적인 사랑 즉 십자가 사랑을 삶에서 열매 맺은 것입니다. 즉, 데살로니가의 한 교회가 마게도냐의 모든 형제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지극히 돌보며 섬겼던 것입니다.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감동과 도전의 말씀 아닙니까?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 기록된 사랑에 관련된 말씀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의 수고(살전1:3)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살전1:4)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되니라(살전2:8) 사랑의 기쁜 소식(살전 3:6) 너희도 피차간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살전3:12) 형제 사랑(살전 4:9) 사랑의 흉배(살전 5:8) 사랑함이 풍성함(살후1:3) 진리의 사랑(살후 2:10) 하나님의 사랑(살후3:5)” 무슨 의미입니까? 사랑이 곧 그들의 삶이었고 사랑의 수고가 곧 그들의 신앙임을 증언 한 것입니다.
* 자신들도 힘들었을 텐데........자신들에게도 쓸 것이 많고 부족함이 많았을 텐데........자신들에게도 궁핍함이 있었을 텐데........아! 그런 것이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을 넘게 하는 구나. 아! 그런 것이구나. 십자가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구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 여덟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민 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고단하고 바빴습니다. 소년은 동생들을 돌보며 함께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11세 때 부터 배운 기계체조는 미국 생활에서의 감당하기 힘들었던 유년기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기계체조가 그렇게 좋았습니다. 기계체조를 배우기 무섭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놀라운 기량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유력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3년 7월 4일, 고난도 회전기술을 연마하던 중에 턱이 마루에 꽂히듯이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고 척추 신경조직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18세, 한창 꿈을 키워나갈 때였습니다. 얼마나 맘이 무너져 내렸겠습니까?
* 이 사고로 소년은 금메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9개월간의 고통의 재활치료를 받는 것보다 더 힘들고 괴로웠던 것은 더 이상 그 인생에 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는 어찌하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주위의 도움으로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뉴욕대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마음은 여전히 방황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캠퍼스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온갖 경멸과 고난과 고통을 받으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누구보다 당신의 아픔과 무너지는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영원에 비하면 지금의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삶 안에는 ‘감당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십자가 사랑, 그 가장 완전한 보배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 그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불구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의사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거의 무모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해내기 힘든 일인데 평생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불구의 몸, 손가락도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전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의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손과 발이 되어 준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한 손으론 자신의 휠체어를 또 한손으론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다녀야 하는 고난의 시간도 지나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랑으로 이미 감당할 힘을 주셨다는 것을 믿으며 이기고 또 이겼습니다.
* 그는 뉴욕대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트머스 대학에서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최고라 불리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수석 레지던트로 졸업하였고 현재는 그 곳에서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환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위로하고 섬기는 슈퍼맨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미국에서 단 두 명밖에 없는 마비 장애인 의사인 이 승복 박사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사랑을 알면 자신의 모든 것을 넘고 이기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웃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꽃 피우며 열매 맺는 십자가 사랑의 증인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진정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삶입니까?
* 실제적인 사랑의 행위는 천국의 삶입니다. 천국은 위로는 온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1장 4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니” 바리새인들처럼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웅변가에겐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몸에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열매 맺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 만일 우리들의 삶이 그리고 우리들의 교회의 실제가 사랑이라면 그곳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외롭고 고독한 사람, 실패한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드는 곳이 될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 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 작은 신앙일 때는 받고자 하지만 깊은 신앙, 익은 신앙은 나누려 합니다. 나눔과 쪼갬의 삶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신앙이요, 바로 그 삶에서 복음은 이웃을 향하여 더욱 크게 확장되어가는 열매를 맺습니다.
* 교회 공동체는 십자가 공동체입니다. 십자가 공동체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의 사랑, 그 실제적인 영광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안에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의 사랑을 덧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놀랍고 영광스러운 사랑 안에 우리 모두가 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가상으로 지어낸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 앞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의 의미는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보여주신 사랑, 나타내신 사랑, 증명하여주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 즉 교회의 구성원이 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그리스도로 보여주신 사랑, 나타내신 사랑, 증명해주신 사랑을 자신의 삶에 체화, 즉 몸에 익게 하여 그 자신도 주님처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육체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만일 주님의 사랑으로 살지 못하면 그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고 그 성도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본질은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 9-10절에서 말씀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진실한 사랑, 깊은사랑, 뜨거운 사랑, 헌신적인 사랑으로 풍성합니까? 만일 우리들의 삶과 교회가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사랑의 수고로 충만하다면 어떨까요?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와 삶이 되어 세상에 도전과 감동을 주는 증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 우리인생에서 별보다 빛나고, 달보다 아름다우며, 해보다 영광스러운 결실을 얻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공부를 하면 되겠습니까? 최고의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 될까요? 공부를 많이 하여 전문가가 되고 교수를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할 수 있으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공부도 열심히, 물질도 깨끗하고 정직하게 많이, 그리고 삶도 부지런히 하여 높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 위에 즉,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쌓고 또 쌓으며 베풀어야 합니다. 그 삶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명되도록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삶이 빛난 삶, 아름다운 삶, 영광의 삶이 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이제 우리는 가능한 더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가능한 더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먼저 손을 내밀어 힘써 섬겨야합니다. 그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에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어둡습니다. 사람들의 심령이 더욱 악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 재림의 때가 더욱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넘치는 사랑의 수고로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와 사람들에게 성취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