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린’은 대만 계 미국인입니다. 이 사람은 요즘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경이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 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NBA 농구하면 2m터가 넘는 장신의 흑인, 백인 선수들의 덩크슛이 인상적입니다. 그 동안 황색인종은 NBA 농구에 활약해본 예가 아주 드뭅니다. 그런데 이 크지 않은 동양인이 거인들의 무대에 끼어들어 그 동안의 기록들을 깨며 자신의 독무대(one's monopoly)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혼자서 18득점 혹은 20득점을 내면서 NBA농구계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선수가 되고 있습니다. ‘경기전체를 주름잡는 선수’라는 극찬까지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키도 크지 않으면서 이런 놀라운 일을 이루어가는 린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제레미 린’은 뛰어난 실력 못지않게 경기장 안팎에서는 항상 겸손한 선수로 유명합니다. 특별히 그는 경기 뒤의 인터뷰 때마다 항상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는 매 경기 때마다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뛴다.’ 라는 팔찌를 차고서 경기를 하며 그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는 신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다니면서 하나님을 체험했는데 그 체험 뒤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문(Fingerprints of God)” 이라 고백하면서 NBA리그에서 경이적이고 눈부신 기록들을 연신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린의 삶의 능력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역사나, 오늘 현재의 역사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인류의 역사에서 놀라운 일을 행한 사람들, 경이적인 일들을 만드는 사람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만들 사람들의 뒤편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기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0:14)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어머니의 태속에서 열 달 만에 그냥 자동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어머니의 태속에서 자신을 하나하나 다시 지으셨다고 고백하며 그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도 신기하고 오묘하여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걸음걸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있는 기적이라고 고백합니다. “신묘막측하심이라.” 오늘 우리들의 삶에도 다윗 뿐 아니라 제레미 린처럼 신비한 일을 시작하시고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이 이미 임재 하여 계십니다.
오늘 자신이 하는 일이 그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땀 흘려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결실을 맺는 사람, 경이적인 결과를 얻는 사람의 대열에 서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우리 모두가 될 것입니다.
* 사사기 13장 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음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이스라엘백성의 죄악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은 당해낼 사람도 막을 길도 없습니다. 조금 나아졌는가 싶다가도 또 넘어집니다. 이젠 기대해도 되겠지 했다가도 어느새 그 기대는 실망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도 늘 넘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처 난 가슴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그들을 품으십니다. 끝없이 지칠 줄 모르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과 끝없이 지칠 줄 모르고 품으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마음 또한 신비입니다. 우리사람들은 한 번 마음에 싫어버린 바가 되면 더 이상 상대도 하지 않으려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들을 품고 사시는지 말입니다.
*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한 없이 긍휼을 베푸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3:22-23) 하나님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없다면 과연 우리들의 인생행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망을 둘 데가 없는 비참한 인생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수많은 죄와 허물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품으시고 은혜주시는 분이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한없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오늘도 끊임없이 메시지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들의 모든 죄와 허물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대한 실제적인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기에 또한 더 이상 죄와 살 수 없다 다짐했다가도 곧 다시 죄 아래 놓이게 되는 진토임을 아시기에 진노와 징벌의 채찍을 휘두르시기보다 자비와 긍휼의 보자기로 덮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와 허물을 범한대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요? 거짓말할 때 마다 종아리가 멍들고, 이웃을 미워하고 시기할 때마다 혈압이 200씩 올라가고, 남의 물건을 탐낼 때마다 손가락이 휘어지며, 예쁜 여자 멋있는 남자를 볼 때 마다 눈앞이 캄캄하게 되는 벌을 받는 다면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보다는 약함 가운데 있는 강함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자람보다는 모자람가운데 있는 유익함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못한 것 보다는 못할지라도 잘하는 것을 보시고 끝까지 세워 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 십자가의 은혜로 아바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신비의 관계입니다. 생명을 나눈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육체의 아버지 이상의 관계입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아버지를 주신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3:37-38) 모든 아버지의 아버지이신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태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비와 기적과 영광의 일들로 충만히 채우신 분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실 임마누엘이십니다. 임마누엘은 신비의 이름입니다.
*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40년의 곤고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의 신묘막측한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제까지의 사사들은 다 성장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자신의 뜻을 따라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역사의 무대 앞에 세우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예 수태고지로부터 시작을 하십니다.
소라 땅에 살던 마노아 부부를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자녀가 없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함으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삿13:3-5) “You are sterile and childless, but you are going to conceive and have a son.”
*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일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택하신 민족을 블레셋의 고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녀가 없어 고독했을 부부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명자, 즉 나실인까지 잉태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니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신비하고 놀랍고 그리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어날 아기는 마노아 부부의 아들이었지만 그들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사명자 였습니다. 장차 태어날 아들은 여느 가정처럼 한 부부의 아들이었지만 여느 가정의 아들과 같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보냄을 받은 자였습니다.
장차 태어날 아이의 인생행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결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획하신 그 뜻대로 그 자녀를 사용해 가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밝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있고 하나님 밖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명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밖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그 삶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은혜와 은총인 동시에 거룩한 사명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계획하신 삶의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요? 장차 태어날 마노아의 아들에게 놀랍고 고귀한 사명이 주어졌다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신 손에 붙들려있는 우리에게도 그에 버금가는 사명이 있음은 당연합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수태고지를 들은 마노아의 아내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켜 남편 마노아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마노아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령에 늘 모시고 살았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소서”(삿13:8) 아내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고자 했던 기도였습니다.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고 전에 들려주었던 메시지를 또 전합니다.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을 다 지킬 것 이니라.”(삿 13:14) 그러자 다시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마노아가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What is your name?” 자신들에게 나타나 놀랍고 신비한 말씀을 베풀어 주는 존재에 대한 확인을 하고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존재의 확인. 내 삶을 주도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대답합니다.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Why do you ask my name? It is beyond understanding."(삿13:18)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묘란 히브리어로 ‘페레’입니다. ‘페레’의 뜻은 ‘숨겨진, 너무 높은, 경이로운, 기적을 실행하는, 놀라운 일을 일으키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 부부에게 거듭 나타나서 수태고지를 하고, 그 잉태된 아이가 하나님의 사명자인 나실인임을 알려준 그 존재의 이름은 바로 기묘자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판단의 벽을 항상 넘으시며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어가시며 성취하시는 그분의 이름이 오늘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의 이름 기묘자입니다. 이사야 9장 6절에서는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참으로 그렇습니다. 삼위일체의 성부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의 사역은 신비와 전능과 영광 그 자체이십니다.
* 이스라엘의 고난과 눈물의 40년 세월을 자유와 회복으로 바꾸시기 위해 한 아기의 잉태의 때로부터 신비한 일을 만들어 가시는 분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친히 나무에 자신을 아낌없이 매달아 완전한 희생 제물로 드리신 분이 누구인줄 알고 있습니까?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하신 분이 바로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신 분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하나님 이십니다. 그 분의 이름은 기묘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세상으로 보내졌을까요? 어쩌다가 우연히 태어난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어쩌다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면 얼마나 비참한 존재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늘 깨달아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삼손의 출생처럼, 온 우주의 창조처럼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묘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려진 내일을 행해 하루하루 인도해 가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 이름을 날마다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삶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그분의 이름을 물어보십시오. “나를 창조한 당신은 누구입니까? 오늘 나도 모르는 이 길을 인도해 가시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때 듣게 될 것입니다. “내 이름은 기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