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보니교회의 관리인남편의 죽음/ 지난 화요일 한 아주머니가 전해준 19살 난 청년의 죽음/ 잠간의 인생살이, 예상 할 수없는 나그네 길.........이 짧고 예상할 수없는 나그네된 인생길에서 할 수있는 한 가장 복된말, 가장 선한말, 진리의 말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다면.......지난 한 주간 우리들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말들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입술의 말은 삶의 길이 됩니다. 입술의 말은 인생의 열매를 맺습니다. 언어는 언어로 끝나지 아니하고 언어의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 얼마 전 “말의 힘” 이라는 실험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제작진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습니다. 흰쌀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미리 마련해둔 두 용기에 그 밥을 각각 담았습니다. 그런데 밥을 담은 용기의 이름이 다릅니다. 하나는 “고맙습니다.” 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하나는 “짜증나” 라는 이름으로 붙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의뢰를 하여 “고맙습니다.” 라는 용기의 담긴 밥에는 “고맙습니다. 너무 예쁘다. 사랑합니다.” 같은 예쁜 말로 매일 들려주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짜증나!” 라는 용기에 담긴 밥에는 “어휴 짜증나, 너무 미워” 같은 미운 말로 매일 들려주도록 했습니다. 실
험은 이렇게 4주간 진행되었습니다. 밥에 귀가 달린 것도 아닐 텐데.........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다른 결과 즉,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용기에 담긴 밥에서는 곰팡이 색깔도 뽀얗고 냄새도 구수한 누룩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나 “짜증나” 라는 용기에 담긴 밥에서는 곰팡이 색깔도 더럽고 냄새도 그야말로 썩은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언어의 차이가 곧 결과의 차이가 되었습니다. 귀도 없고 생명도 없는 밥에도 입술의 말이 이토록 놀라운 결과를 드러냈다면 하물며 우리 사람들에게서의 입술의 말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 잠언 13장 2-3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결실하고 열매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선하고, 의롭고, 아름답고, 축복된 말을 하면 그에 합당한 결실을 얻고 악하고, 더럽고, 거짓되고, 저주스러운 말을 하면 역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삶의 마당에서 펼쳐지는 말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오늘 야고보서의 본문 10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을 소유하게 될 의인이 된 우리성도들의 입술에서는 찬송과 저주가 함께 섞여 나와서는 안되겠습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오직 생명의 말, 축복의 말, 진리의 말,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말만 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 오늘 마태복음의 본문 16절의 베드로 사도의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한 이 신앙고백은 완전하고도 완벽한 웅변이었습니다. 예수님당시 종교생활과 성경지식에 밝았던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몰라봤는데 겨우 어부출신이었던 베드로가 어찌 그렇게 위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는지. 인간의 입으로 어찌 그리 영광된 말을 선포할 수 있었는지........결국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는 그 고백 안에 육체의 삶, 흙 같은 삶을 살다가 영원히 사라져 버릴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또한 그 고백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또 어디 그 뿐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놀라운 신앙을 고백하는 하는 제자를 믿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까지 미리 일러 주셨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21절) 세상에 이 보다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그의 고백위에 세워지고, 하나님의 비밀스런 영생의 계획가운데 가장 정점에 있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비밀을 듣게 되는 은총을 입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말이 복을 부르고 은총을 낳습니다. 입술의 언어가 보배를 부르고 영광을 누리게 합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의 입술을 통하여 드러내는 언어들은 어떻습니까?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며 영광을 얻기에 충분한 언어들입니까? 하나님께 은혜와 은총을 받으며 복을 누릴 수 있는 언어로 충만한
우리 모두의 삶이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런데 오늘 우리는 혀의 말 때문에 극과 극을 오고간 한 사람의 운명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의 본문 2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펄펄 뜁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웅변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 무슨 뜻입니까? “주님!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다니요. 제가 막겠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 이번에는 칭찬대신 책망을 하십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용감한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왜 칭찬대신 사단이라 하시며 엄한 책망을 하셨을까요? 무엇이 그로 최고의 축복과 책망사이를 오고가게 했을까요? 인간적으로 보면 베드로의 이 고백도 역시 칭찬받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역시 나의 고난과 죽음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제자밖에 없구나!” 그러나 주님은 이런 말씀 대신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말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살아있어야만 자신에게 득이 된다는 인간의 깊은 탐욕이 가득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무기는 무엇일까요? 총과 칼과 원자 폭탄과 화학무기일까요? (시리아 내전) 또한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다루기 힘든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가난이 십자가일까요? 아니면 가족이 십자가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성격과 기질이 십자가일까요? 총과 칼이 무서운 무기임에 틀림없지만 그리고 가난과 가족과 타고난 성격과 기질이 십자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난이 무서워 자살하고 가족 간의 갈등 때문에 원수처럼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보다 더 무서운 무기와 더 힘든 십자가는 세치 혀와 그를 통해 쏟아지는 말들입니다. 혀로 인해 칭찬을 얻기도 하지만 혀로 인해 책망을 받습니다. 혀로 인해 성공도 하지만 실패도합니다. 혀로 인해 존귀와 영광을 얻기도 하지만 잘못 놀린 혀 때문에 저주와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혀로 인해 죽을 번한 사람이 살기도 하지만 혀로 인해 살 사람이 죽기도합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고난이기도 하지만 그 고난을 통과하면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입술에는 야고보의 말씀처럼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큰 배가 작은 키에 의해 움직여지듯이, 온 산의 삼림이 작은 불씨로 인하여 태워지듯이 인생이 그 작은 혀의 말에 의해 이끌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재갈 물려 다듬어진 입술! 그리하여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 그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 혹, 여러분은 이제까지 살아오시면서 했던 말들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말로 삶의 밭에 씨앗을 뿌렸을까요? 자녀에게.........부모에게........부부지간에........그리고 형제간에.........이웃에게.......과연 어떤 말들을 하였습니까? 얼마나 부정적이요. 파괴적이요 비인간 적이었습니까? 얼마나 상처 나게 하며 병들게 하며 절망하게 하였습니까? 또한 내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있는 말, 없는 말로 상대에게 얼마나 고상했습니까? 그러나 내게 조금이라도 손해난다 싶으면 또한 얼마나 거칠고 날카로웠습니까? 토해낸 말들을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스럽지 않습니까? 혀로 실언하고 실수한 것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아! 혀를 길들일 수 있다면, 아 ! 혀를 통제 할 수 있다면” 야고보의 절규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힘으로 내 지혜로는 혀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다윗도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말에 실수가 가득한 우리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 어떤 상황, 그 누구에게도 선한 말, 아름다운 말, 생명의 말, 소망의 말, 축복의 말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 우리는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그냥 “힘들다. 어렵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드냐?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고난이 많은가?”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겪는 고난의 이유, 내가 당하는 어려움의 이유를 잘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혹 내가 남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렵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았었는지? 축복의 말을 베풀어야 할 때에 혹, 남을 저주하거나 비방하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심중에라도 남을 저주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 비난과 저주의 말이 바로 나에게 되돌아 올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토해낸 말이 씨앗이 되어 곧 내게로 돌아와 열매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잠간의 세상살이는 하는 동안 말 한마디라도 돕고 살아야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복된 말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속에 있고 세치의 혀로 토해내는 말속에 있습니다. 곧 나 자신 안에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0-21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입술의 말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내 입으로 소리 내어 하는 말이 곧 그 삶에서 열매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