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 첫째 주일“네 믿음의 지경을 넓히라.”지난주일 “사랑의 지경을 넓히라."는 말씀에 이어 오늘은“네 말씀의 지경을 넓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들은바 말씀을 삶으로 풀어내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 오늘 나는 누구입니까?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을 받을 사람입니까?
*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목회하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5년 4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1944년 4월에 순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5년 4개월 동안 목사님의 옥바라지를 하며 가정의 생계를 돌보았던 분이 있습니다. 그는 유 계준 장로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모펫이 평양시내에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 구타하는 등 선교를 방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맞고서도‘예수를 믿으라.’고 권유하는 그에게 설복되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온 마음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주 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자 당시의 금지령을 어기고 그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럽게 장례식을 치러드렸습니다. 또한 해방 후 공산정권이 교회를 적산가옥이라고 압수하자 자신의 집을 예배 장소로 제공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이미 내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6.25당시에는 가족들을 남하시키고 혼자서 교회를 지키다가 평소 자녀들에게 일러온‘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가훈대로 퇴각하는 공산군 의해 1950년 10월 처형당해 한 알의 밀이 되었습니다. 오직 말씀에 붙들려 말씀대로 하나님을 신앙했던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유 계준 장로님의 생애는 그것으로 끝나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그 자녀들에게‘종합병원을 세워 동포들에게 봉사하라.’고 가르쳤는데, 8남매 중 7명이 의사나 약사가 되었습니다. 생전에 그의 장남 유기원은 국립의료원 원장이 되었고, 차남 유기정은 기독의사회 회장, 장녀 유기옥은 누가병원 원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넷째아들 유기천은 법학을 공부하여 서울대 총장이 되었는데 군부독재에 저항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사위 이한빈은 부총리를 지냈습니다.
유계준 장로님의 후손이 모두 106명인데 지금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목사라고 모두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장로라고 모두 다 목숨 바쳐 교회를 지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교회를 배반한 장로들이 더 많았습니다. 성도를 하나님의 성도답도록 지키는 힘은 신분이나, 재능이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합된 성품이요, 말씀으로 다져진 인격이요, 말씀으로 제련된 삶입니다. 삶이 말씀과 연합되면 세상 그 어떤 것도 그를 감당 할 수 없게 됩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은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말씀 따로 삶 따로 입니까? 아니면 말씀과 삶이 하나 되어있습니까?
*‘말씀의 지경을 넓히라’는 의미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넓힐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가 자신의 삶에 의미가 될 때까지, 그 말씀의 깨달음이 자신의 삶에서 열매 맺을 때까지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화되어 가는 영역을 확장 시켜 가라는 것입니다. 말씀과의 일치, 말씀과의 조화, 말씀과의 연합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통치해야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 있는 삶, 복 받은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영혼에서 강수가 되어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는 절대 힘이요, 절대 능력이요, 절대 권세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영혼의 걸음을 복의 자리로 인도하는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늘 읽고 묵상하기를 좋아하는 시편 1편 1-3절에서 말씀합니다.“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진실로 우리들의 삶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하기를 원한다면.......... 진실로 우리들의 삶의 모든 행사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진실로 우리들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춤추는 삶이되기를 원한다면.......... 말씀과의 일치, 말씀과의 조화, 말씀과의 연합의 지경을 넓히는 것은 반드시 완수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던져졌습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되 그것에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의 의미가 자신의 삶에 의미가 되도록 힘써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요? 과연 절망과 낙심과 부정적인 언어들을 사용할까요? “내 인생은 성공하기 힘들어. 나는 어려울 거야. 내 인생은 늘 꼬여있어.”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통치 받는 사람은 절망과 낙심의 환경가운데서도 오히려 소망과 긍정의 언어들을 사용하여 승리를 선포할 것입니다.“환란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시119:143) 또한 깨달은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서 열매 맺도록 싸우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이 세상의 것들에 몸과 마음을 쏟으며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 없는 삶을 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과 함께 투쟁하는 사람은 비록 몸은 이 땅에서 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삶은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확연하게, 선명하게 구분될 것이 분명합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낮과 밤이 하나가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인 성도는 세상과 연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6:14-15) 그렇습니다. 말씀의 지경을 날마다 넓히는 성도의 삶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넉넉히 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까지도 유업으로 받습니다. 인생승리의 성패여부는 나의 삶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장되느냐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 함께 상상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아주 아름답고 아담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벽돌을 차근히 쌓고 지붕을 올립니다. 아주 예쁜 창문을 달고 값비싼 대문도 달았습니다. 그리고 외벽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이제는 각 방을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드디어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집이 겉보기에는 모두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두 집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집은 반석위에 세워졌고 다른 한 집은 모래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평온한 날씨에서는 두 집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날씨가 언제나 온화하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언제 폭우가 내릴지 모르고, 언제 폭풍이 불어 닥칠지 모르는 것이 세상의 날씨 아니겠습니까? 폭풍우가 밀어 닥치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아무리 값비싼 고급 재료로 지었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을 듣는 것과 들었던 말씀을 행하는 것을 집과 반석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인 연고요”(마7:26) 흔들림이 없는 견고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택함 받은 성도들이 모두 예배의 자리로 나아와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멘도 하며 이해하고 깨닫고 인정합니다.“그래, 그렇게 살아야해. 주님의 말씀이 어쩜 이렇게 옳으냐. 딱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야!”그러나 그렇게 이해하고 깨닫고 인정하면서도 행하지 않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사람을 향해‘모래위에 세운 집과 같은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인생은 언제 시련의 바람이 불지, 어떤 고난의 폭풍우가 불어올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평안히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소망 일 뿐입니다. 작은 산을 넘었다 싶었지만 더 큰 산을 넘어야 하고, 이젠 평안하겠다 싶었는데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인생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만일 고난 앞에 준비되지 못한 모래인생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환난 앞에 무방비 상태의 인생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7) 산산이 무너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깨달은바 말씀을 삶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부어지는 믿음과 신뢰와 소망으로 다져진 반석 같은 힘이 그 심령에 심기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초연히 시련의 파도를 넘고, 묵묵히 고난의 태풍을 향하여 나아가 마침내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나는 누구입니까? 시련 앞에 무너질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련 앞에서 그 능력을 나타낼 사람입니까?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말씀의 지경을 확장하십시오. 어제까지는 말씀을 듣기만 하였다면 이제부터는 행하기 쉬운 말씀부터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어제까지는 행하기 쉬운 말씀만 실천하였다면 오늘부터는 행하기 어려운 말씀도 실천에 옮기십시오. 어제까지는 자신의 마음에 합당하고 자신에게 유익하다 여기는 말씀만 실행하였다면 오늘부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도, 자신에게 짐이 되는 말씀도 다 행하는 지경으로 나아가십시오. 어제까지는 말씀이 삶의 반만 차지하였다면 오늘부터는 삶의 전부가 되도록 확장하십시오. 말씀을 행하는 만큼 삶의 지경이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만큼 복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만큼 능력과 권세와 권능이 부어진 반석 같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아는 깊이가 더욱 깊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