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설명하기도 어렵고 당해낼 길도 없습니다. 얻어맞고서도 잠시 후면 또 그 얻어맞을 길로 나아가고, 실패하고서도 또 그 실패할 길로 나아가고, 눈물 흘리고서도 또 그 눈물 흘릴 길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아! 육체의 어리석음이여! 아! 깨달음을 받지 못한 자의 영혼이여! 자기의 길, 육체가 요구하는 길을 꺾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면 끊임없이 흐르는 생명의 강으로부터 새 생명과 그 능력을 얻을 텐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복락의 강수가 그 자신의 차지가 될 텐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그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각기 제 길로 나아간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6-7) 길은 오직 외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억압을 풀어헤치신 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 하나님을 떠나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 세상과 연합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마7:26)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 불 때 그 모든 수고가 산산이 부서져 내림 같은 슬픔에 빠집니다. 또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혼인 잔치에 들어감을 입지 못한 다섯 처녀와 같은 절망에 처하게 됩니다.(마25:1-13)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았으나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했던 부자의 운명과 같은 처지에 떨어지게 됩니다. (눅12:13-21) 그러기에 우리는 내일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속히 깨어나 오직 하나님의 길만이 삶의 행복과 승리를 위한 것임을 밝히 아는 지혜와 명철로 충만해야겠습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6.10) 지혜와 명철을 구함으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워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오직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여 해가 힘 있게 솟음 같은 영광의 능력을 입고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신복 시스라 그리고 그들의 절대적 의지였던 철 병거 900승을 완전히 섬멸한 드보라의 충성으로 이스라엘은 40년간 태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어리석음으로 제 길을 갔습니다. 결국 그들의 악행은 미디안의 손에 의하여 7년간이나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얼마나 그 고난이 극심하였던지 본문에서 기록한 것처럼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어 놓고 살아야할 만큼 처절했습니다. 추수철이 되면 미디안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합전선을 이루고 있던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이스라엘의 토지와 소산을 다 가로챘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마치 메뚜기 떼가 모든 이삭을 잘라 먹은 것 같은 황폐함만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 3-4절에서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환난이요 아픔입니다. 세상과 연합하면 마치 산에다가 구멍과 굴을 뚫어놓고 사는 것 같은 비참한 눈물이요, 고통입니다. 어리석음으로 충만하면 패배요 절망입니다. 얻은 것 같으나 흩어지고, 모은 것 같으나 사라지며, 쌓은 것 같으나 무너집니다. 아! 육체의 어리석음이여! 그 결실 황폐함이여!
온 유럽을 통치하려했던 나치의 히틀러가, 천황이라 자칭했던 일본 왕이, 공산당의 스탈린이 각 시대를 통째로 삼킬 것 같이 달려들었지만 결국은 다 무너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엔 생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 어찌 열매가 결실하겠습니까. 삶의 얻음, 모음, 쌓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삶의 승리, 기쁨, 영광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함으로, 그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감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쇠하거나 마르거나 무너지지 않는 기쁨과 평강과 자유와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미디안의 압제를 피하여 산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처절한 고난과, 열심히 땀 흘려 농사했지만 흩어지고 무너져 내려 황폐화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구원자를 세우셨습니다. 그 어두움의 시대에 빛으로 쓰임 받았던 그는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기에 삶도 영혼도 다 황폐화되어버린 시대와 역사 앞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들려 구원의 전사로 쓰임 받았을까요? 출중한 가문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장수의 기개와 배짱과 용모를 지녔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뛰어난 지식과 재능으로 충만했기 때문이었을까?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에 들리게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드온에게는 내세우고 자랑할 만한 조건, 택함 받아 쓰임 받을 만한 특징이 없었습니다.
본문 15절에서 기드온이 고백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그렇습니다. 기드온은 그 자신의 고백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받기에는 도무지 합당할 만한 조건이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했던 그의 외침은 이시대의 구원자로 나서려면 그에 합당한 능력과 자격, 힘과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도무지 그 큰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기 부족, 자기 연약함에 대한 호소인 것입니다.
* “내가 무엇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이기겠어? 내가 무슨 힘으로 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겠어? 내가 무슨 수로 이 실패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내가 무슨 힘으로 이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겠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쏟아내는 우리들의 탄식 아닙니까? 세상이 너무 커 보이고 높아 보이고 강하게 보이고 어려워 보이니까요. 이렇듯 자기 부족을 깨달은 자, 자기 연약함을 발견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위로와 소망과 능력의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인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그렇습니다. 삶의 해답, 시대와 역사의 해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입니다. 동일한 말씀이 12절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 이것이 우리의 삶의 길이요, 생명이요, 승리인 것입니다. 기드온은 결코 큰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미디안과 한번 싸워보자고 하는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위하여 숨어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숨어서 조용히 일상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영광이 임하자 그는 큰 용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작은 사람도 큰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부족한 사람도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와 명철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보잘 것 없는 가문이 뛰어난 가문이 되고 비겁했던 사람이 용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나와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성취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노아,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이들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넘을 수없는 담도 넘고, 건널 수없는 강도 건너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용사가 됩니다.(히11:38)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5-26)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가장 큰 재산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합니까? 진정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그 영광의 헌신과 섬김으로 성취된 임마누엘의 영광이 이미 임한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큰 용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세상을 한 사람 치듯 이기는 하나님의 강력일 수밖에 없으며 그 어떤 암흑의 환경에서도 솟아오르는 빛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드온에게 찾아가신 하나님께서 오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임마누엘,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함이라” 이것은 가지고 있는 자격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세상을 이기는 강력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들의 믿음으로 성취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의 이 약속을 믿습니까?
임마누엘의 영광을 믿음으로 받아 마침내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