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가운데 오신 사건은 절대 진리입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께서는 죄악으로 신음하며 그 죄 값인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것으로 부터 자유와 영생의 길을 여시기 위하여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극한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그 죽음가운에서 부활하셨고 부활 후 40일 후에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승천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은 무능한 우리사람들에겐 신화 같은 이야기로 들리지만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진리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우리를 그분의 사람으로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나오게 하였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예물을 드리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있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의 일을 깨닫고 이해하게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자신의 삶에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믿음의 눈을 더 크게 열고 기드온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보겠습니다.
* 미디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합국이었던 아말렉 사람 동방사람들과 함께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섬멸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무려 십삼만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때, 기드온에게는 하나님의 신,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서 미디안과 싸울 군대를 모집하였습니다. 그러자 믿을 수없는 것은 얼마 전까지 기드온을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기드온이 속해 있던 지파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삼만 이 천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기드온은 그들을 이끌고 하롯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 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십삼만 오천 명과 삼만 이천 명! 싸움이 되겠습니까? 결과가 뻔한 전쟁이었습니다. 숫자적으로도 그렇고 군대의 내용면에서도 결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 본문 12절입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사막의 전쟁에서 낙타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모래땅을 마른 땅처럼 쉽게 다니는 발을 가져서 시속 20Km로 달리며 400Kg이나 넘는 짐을 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디안에게는 이런 낙타가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 들려져있을 창검은 어떠했겠습니까? 이스라엘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드온에게 모여든 삼만 이천 명의 사람이 특수부대출신이거나 남다른 무기를 지녔거나 특별한 전략을 지닌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모여온 삼만 이천 명이 많다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쫒은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할까 함이니라.” 한명의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때에 모여온 백성이 너무 많으니 전쟁이 두려운 사람은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그리하여 이만이천 명이 삼만 이천 명의 무리 속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이제 겨우 만 명만 남은 것입니다. 얼마나 허전했겠습니까? 남아있던 만 명은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삼만 이천 명으로도 어림없을 텐데 겨우 만 명만 남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남아있던 만 명은 적어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민족을 지켜내겠다는 용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또 그 만 명도 많다 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만 명도 많다하시면 아예 처음부터 원하신 숫자만큼만 모으셨으면 될 텐데 왜 모았다가 이렇게 거르고 또 거르시는 것일까요?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작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그분의 계획은 온전히 성취되게 됩니다. * 한 번에 복을 부어주시면 좋은데......., 은혜를 주시면 좋은데....., 그러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가장 선한 것으로, 가장 귀한 것으로 채우십니다.
* 본문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명을 받은 기드온은 만 명의 사람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졌습니다. 한쪽은 물을 손으로 움켜서 입에 대고 핥는 사람들이었는데 삼백 명이었습니다. 다른 한쪽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구천칠백 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수가 아닌 삼백 명만 남기시고 나머지는 각각 그 처소로 돌려보내십니다. 이제 전쟁은 십삼만 오천 명과 삼백 명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과연 삼백 명으로 미디안 연합군 십삼만 오천 명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연합군을 이기려면 적어도 한명 당 사백오십 명을 물리쳐야 이 전쟁에서 이기게 됩니다.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과연 승리하겠습니까? 만일 승리한다면 그 승리의 요인, 승전의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러나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그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그 영광스런 역사하심의 선봉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약한 자로 강한자보다 더 강하게 하시고, 가난한자로 부유한 자보다 더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어떤 설교가 들은 손에 물을 떠서 핥아 먹은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적을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전략적으로 승리를 위해 지도력이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서 사용하신 전략은 빈항아리와 나팔과 횃불밖에는 없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항아리를 들고 항아리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이런 싸움에서 과연 뛰어난 전략가들이 필요하겠습니까? 과연 무적 장수들이 필요했을까요? 이 전쟁의 성패는 과연 무엇에 달려있을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은 무엇이었을까요?
* 만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사람들이 잘못되었고 물을 손에 떠서 마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특별한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에 대해 언급하셨을 것입니다. “저기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던 구천칠백명의 사람들은 정신상태가 틀렸다. 저런 사람으로는 미디안을 이길 수 없다. 물을 손에 떠서 마신 너희는 대단하다. 너희는 지혜와 능력과 주의력과 전략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너희는 위대하다 그러기에 너희는 승리한다. 나가자”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싸움은 그런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드온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겨진 삼백 명의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삼만 이천 명의 무리 속에 섞여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그들은 결코 뛰어난 용사도 칼과 창을 특별하게 다루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삼만 이천 명의 사람들 모두가 그만그만했습니다. 기드온처럼 미디안의 압제에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 시대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특별했다면 미디안의 칠 년 동안의 압제 속에서 뭔가를 시도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용기의 사람, 특별한 용사는 압제 속에서 그 능력과 빛이 나타나 그대로 숨죽이며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압제 앞에 분연히 일어섰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의 선진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삼만 이천 명에서 만 명으로, 만 명에서 다시 삼백 명으로 남겨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전적으로 향하는 정제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마지막까지 흩어지지 않고 막강군대 미디안에게 맞서는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입니다. 마음이 다져지지 않았다면 모두 다 도망쳤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러분! 과정이 사람을 연단합니다. 과정이 사람을 빚어냅니다. 결단의 사람으로, 용기의 사람으로, 불굴의 사람으로, 신뢰의 사람으로, 헌신의 사람으로, 겸손의 사람으로, 순종의 사람으로, 충성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냅니다.
* 한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1970년대 미국에 “That's incredible" 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유럽의 왕들이 타는 말들을 선발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고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월등한 말들을 모아 훈련시키는데 여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백 마리의 말들을 몇 십 마리로 걸러냅니다. 그 중 특히 마지막 과정이 가장 어렵고 힘든데 그 과정을 통해서만 최고의 말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훈련 중인 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조련사들이 휘슬을 불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야합니다. 조련사들은 그렇게 훈련을 받은 말들을 3일 동안 사막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기진맥진 할 때까지 놔둡니다. 말들은 고작 아침이슬정도만 먹으며 간신히 버팁니다. 그렇게 몇 칠이 지나면 다 죽어가는 말들을 다시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 안으로 데리고 가서 물을 향해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목이 말라 거의 죽어가던 말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정신을 잃은 것처럼 달려갑니다. 그런데 조련사들은 이 말들이 물을 마시기 바로 직전에 휘슬을 붑니다. 얼마나 잔인한 휘슬소리겠습니까? 평소 휘슬 소리에 모든 행동을 멈추도록 훈련받은 말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절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몇 마리는 훈련받은 대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섭니다. 절대순종입니다. 그러면 조련사들은 그 말에게 다가가 몸에 낙인을 찍습니다. "왕을 섬기기에 합당한 말"
*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도 삼만 이천 명의 사람들이 만 명으로, 만 명이 다시 미디안과 맞붙어 싸울 삼백 명의 용사로 빚어져 가는 영적 과정 속에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나는 문제들이 바로 그 과정입니다. 가정적으로, 일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녀들의 일에서, 경제적으로, 학업 때문에, 건강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으며 또 겪고 있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점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가고 빚어져가고 세워져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오늘도 하나님의 진정한 일꾼으로, 용사로 세워져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싸움이요 전쟁입니다. 그러기에 삶에 닥친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닌 그 문제들을 통하여 나를 더욱 새롭게, 강하게, 아름답게 빚어 가실 하나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빚어지면 순종은 그 삶의 옷이 됩니다. 먹으라하면 먹고 굶으라 하면 굶습니다. 나가라 하면 나가고 들어오라 하면 들어옵니다. 가라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섭니다. 신뢰와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입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의 사람들이 막강 용사가 되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삼백 명과 빈항아리와 나팔과 횃불이 어떻게 십삼만 오천 명을 섬멸할 무기가 되겠습니까? “아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겨우 삼백 명밖에 없는데 어떻게 미디안과 싸우겠습니까? 게다가 빈항아리에 횃불을 감추고 나팔을 불면 깨뜨리라고요. 애들 장난입니까? 정말 웃기네요.” 이런 말들이 쏟아졌을법한데 그들은 그러지 않고 하라 하신대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신뢰의 열매요, 순종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승리입니다.
* 막강군대 미디안을 향하여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전쟁은 미디안을 때려눕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진정한 싸움은 이스라엘 안에 있었습니다. 신뢰할 수없는 환경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케 하는 싸움, 순종할 수없는 일에 전적으로 순종하게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미디안과 같은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코 만만한 싸움이 아닙니다. 과연 이 전쟁에서 이길 비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왕을 섬기기에 합당한 말,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한 삶 즉,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으로 빚어지는 것이 모든 승리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