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영국런던과학박물관에서는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 을 선정하여 발표했습니다. 그 당시 선정된 발명품, 혹은 발견 품들은 1705년 토머스 뉴커먼이 발명한 증기기관과 빌헬름 콘라드 뢴트켄의 X레이, 전보, 생명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의 시작이었던 1953년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DNA 이중 나선구조,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 아폴로 10호 우주선, 1908년 제작하기 시작하여 일천 오백만대 이상을 판매한 T형 포드 자동차, 초기 컴퓨터인 파일럿 ACE, 인류의 우주탐험의 근간이 된 독일 V2 로켓 엔진, 수백만의 목숨을 살린 항생제인 페니실린 등이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들을 이루었는데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은 우주의 신비함을 발견하기 위해 경제력이 있는 나라들이 우주탐사를 하기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한국도 2015년까지 세계10대 우주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엄청난 재정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오는 26일에는 3차 나로호 발사가 준비되고 있는데 이번엔 꼭 성공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견하려하고, 무언가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보다 가치 있는 삶, 보다 복된 삶, 보다 영광스러운 삶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발명했을지라도, 또한 대한민국이 온 우주를 발견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사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인류든, 한 국가이든, 한 개인이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모든 것의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진실로 발견해야 그 삶의 가치와 목적이 하늘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진실로 만났습니까?
*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 그리고 진리의 사역을 통하여 생명의 생명 됨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발견한 마리아의 삶의 방향은 이 땅이 아닌 하늘로 향하는 사명자의 길이 되었습니다. 삶이 곧 사명이 된 마리아는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그리스도께 부어 드리는 전폭적인 헌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리아의 마치 자신의 목숨을 내어 드리는 것 같은 아낌없는 헌신을 하나님의 지극히 보배롭고 영광스러운 일인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이 담긴 헌신이 드려지는 일을 하나님의 생명의 일에 사용하십니다. 사랑의 헌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 기쁨의 헌신은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향기로 충만합니까? 오늘 우리의 삶에서 쏟아지는 향기는 무엇입니까? 생명의 향기, 사랑의 향기, 기쁨의 향기로 충만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요12:3)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 그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없는 최고의 보화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 보화를 지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최고의 것을 발견했기에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와는 달리 지극한 헌신이 드려지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하는 영광의 향기가 가득한 그 자리에 오물냄새 가득 풍기는 한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12:5)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의 목소리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일성은 마치 가난한 자들을 염려하는 ‘사랑의 외침’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육체의 탐욕으로 가득한 돈에 눈이 밝은 한 도적의 ‘아쉬움에 대한 탄식’이었습니다. ‘저것을 팔아 헌금으로 드렸다면 그 중의 일부는 내 것이 되었을 텐데..........아! 저돈 아깝다. 아까워.........’ 가룟 유다의 눈엔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한 한 여인의 사명과 헌신으로 빛나는 그 보배로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 여인의 생명과 같은 아낌없는 헌신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계획이 성취되는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보다도 더 선명히 그 세계를 보았어야했는데 어찌된 일이었을까요? 가룟 유다! 그는 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 그는 육체의 욕망,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장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 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그가 어찌 제자의 삶을 살지 못했을까? 예수님과 함께 3년을 먹고 마시고 잠자던 그가 왜 예수님을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발견하지 못했을까? 가룟 유다! 그가 부활과 생명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했더라면, 참으로 그랬더라면 그의 생명은 아낌없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랬더라면 돈으로는 도무지 얻을 수없는 복을 누렸을 텐데 말입니다. ‘아! 안타까워라. 절망이어라.’ 차지하지 못한 돈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았어야할 삶을 놓쳐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 가룟 유다의 비극은 아담과 하와의 맏아들로써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 살았어야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하고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에서 떨어져 나간 비극과 같습니다. 가룟 유다의 비극은 이삭의 장자로써 하나님의 보장된 복을 누렸어야할 에서가 경솔한 행동으로 장자의 복에서 멀어진 비극과 같습니다. 비극의 인생으로 불릴만한 가인과 에서와 가룟 유다, 이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작은 것에는 눈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큰 것에는 암흑이었기 때문입니다. 땅의 것에는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 하늘의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눈은 큰 것을 향하여 진실로 열려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영원한 것을 향하여 진실로 충만합니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3:2-4) 여러분! 가룟 유다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아 그리스도로 살아야할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가치와 목적으로 날마다 새롭게 더욱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도 가룟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 에서와 가인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세상의 모든 나라, 그리고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망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금나라와 금나라에 속한 사람도 망합니다. 은나라와 은나라에 속한 사람들도 망합니다. 동나라와 동 나라에 속한 사람들도 망합니다. 경제의 나라도, 철학의 나라도, 문화의 나라도, 과학의 나라도 다 망합니다. 그러나 결코 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계속되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로 이룬 나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강을 통과한 나라가 바로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2:44)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꿈꾸는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 나라는 금나라 은나라도 아닌 그리스도를 발견한 삶의 나라, 사명과 헌신으로 충만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사명과 헌신의 나라가 지금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며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놀랍고 큰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위에 은총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나라: 술과 향락에 취해 사는 나라)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만족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이미 영접한 사람들은 더 높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나아가야합니다. ‘얘야! 이 정도에서 멈출 수는 없어. 너의 믿음은 이제 시작점에 있는 것이야. 더 높은 지경으로 나아가야해’
* 우리의 삶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거나 입을 것을 입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홀연히 우리를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행하는 자리에 부름을 받았다면 우리는 뛰어야합니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트랙에 있어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죽을힘을 다하여 목표점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도 힘껏 달려야 합니다. 만일 달리기 선수가 출발신호가 떨어졌는데도 달리지 않는다면 그는 실격을 당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따라 믿음의 경기장, 제자 됨의 경기장에 서게 되었다면 힘써 달려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점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 자리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쓸 때까지 우리의 믿음의 달리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멈추면 가룟 유다처럼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가룟유다의 비극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았지만 그리스도를 제대로 발견하여 삶의 트랙을 사명자로 달린 것이 아닌 땅의 것만을 바라 본채 육체의 제자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발견한 삶의 최고의 것은 무엇입니까? 육체는 육체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육체는 우리를 육체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다가 지옥으로 아낌없이 던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육체가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발견하면 그 몸은 사명의 몸이 되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영광의 도구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면 그는 그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께 스스로 묶어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