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11월 미국전역을 감동시킨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시 11살의 브랜든 포스터라는 아이입니다. 브랜든 포스터는 8살이 되던 2005년에 백혈병진단을 받고 2008년 11월 21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삶을 마감하기 약 두주 전에 한 기자와 이런 인터뷰를 합니다.
<기자>지금의 건강상태는 어떤가? <브랜든>저의 생명은 앞으로 1주일을 못 넘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빨리 데려가나 생각도 해봤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아닙니까. 즐거운 삶이었습니다. <기자> 소원이 뭐지? 제일 하고 싶은 일말이야. <브랜든>한 가지 있어요. 병원 갔다 오다 목격했는데 거리에 노숙자가 너무 많더라고요. 그들이 배고파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싶어요. 저 사람들 모두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게 나의 소원입니다.
삶을 두 주간 남겨놓은 11살 난 어린 아이의 마지막 소원은 먹고 싶었던 것을 먹는 다거나, 입고 싶었던 옷을 입는 다거나, 가고 싶었던 곳을 가겠다는 것이 아닌 저 사람들 모두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사랑의 나눔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두주동안 3500여명의 노숙인에게 입맛에 따른 샌드위치가 제공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14일간의 삶이 주어져 있다면 우리는 어떤 소원을 갖겠습니까?
* 섬김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섬김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더욱 높이 세워갑니다. 섬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꽃피고, 기쁨이 샘솟고 소망이 번져나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그분을 향하여 주님이라 외쳐 부르면서도 섬김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아직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미숙아 상태입니다. 성숙한 영혼을 지닌 사람은 ‘주님! 어찌 저 같은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라는 겸손한 고백과 함께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해 주셨는데’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병든 이웃을 섬깁니다. 섬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하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실제적인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과 정신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다스림을 당하고 그리스도께 무릎 끓은 삶과 정신이라면 그 삶속에서는 아침 햇살 같은 영롱하고 순결한 섬김의 빛이 비춰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리스도는 사랑의 실제인 섬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섬김으로 풍요롭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섬김을 더욱 확장시켜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 부산에 수영로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2009년부터 부산의 대표적 쪽방 밀집 지역인 부산동구 매축지 마을에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매축지 마을은 전체 주민이 오천이백 명 가운데 약 50%가 심각한 빈곤 문제를 안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천백여명이나 되어 노인 비율이 높은 곳입니다. 그동안 수영로교회는 러브상자라는 생필품 박스를 그 소외된 지역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섬겨 왔습니다. 지난 달, 특별새벽 기도회 때에 헌금된 1억 원으로는 약 33명 실명위기 환자들의 개안 수술 비용으로 제공하였었는데 앞으로는 노후 된 가옥도 수리하고 공동화장실도 개선해 주고 연탄과 방풍텐트, 그리고 김장 김치 등을 나눌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은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 은혜교회도 이곳 헝가리 땅에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들 행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11월이 되면 방한복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보배로운 일입니까? 헐벗은 이웃에게 입을 것을 나누고 배고픈 이웃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슬픔으로 가득한 이들에게 위로로 함께하는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손을 가진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저녁 식탁의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으셔서 옆에 두시고 허리에 수건까지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으시며 제자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부르셔서 그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허리에 두른 수건으론 물기까지 닦아 주십니다. 이 당혹스런 모습을 지켜보던 베드로는 ‘주님! 주께서 제 발을 씻기시려고요? 제 발은 절대 씻기실 수 없습니다.’ 하며 거부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들의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 어떤 일을 경험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황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신비한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영광의 음성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종들이 하던 일을 하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황송해서 주님의 그 일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의 그 황송스런 섬김을 자신의 몸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의미심장한 영적인 깨달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그 섬김의 깊은 뜻을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들의 발을 씻기셨을까?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온통 이해되지 않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왜 이런 어려움이 있을까? 왜 하필 이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질까? 베일에 가려진 삶의 길이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복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예수님께서 다시 저녁식탁에 앉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아느냐?”(요13:12) 너희들 궁금했지? 내가 왜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은 당황스런 일을 하였는지. 이제 그 뜻을 알려 주마 하십니다. 베일에 가려졌던 그리스도의 섬김의 뜻은 본문 14-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허리를 숙이셨다면 진토에서 나서 진토로 돌아가야 할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흠도 없고 티도 없으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자리에 내려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면 모든 생각과 행위가 악하여 불결하기가 짝이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라”겸손히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 저에게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없는 보배롭고 소중한 소원이 있습니다. 저의 그 소원은 멋지고 고급스런 정장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수천 만원하는 고급 자동차를 몰고서 휘파람 불며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대표가 되겠다는 것도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과하여 입는 멋지고 고급스런 정장, 십자가를 통과한 멋진 자동차와 여행, 주님의 말씀으로 연단된 뒤의 회사의 대표, 불같은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뒤의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드리는 삶이라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절히 바라는 보배롭고 소중한 꿈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하심을 본받아 살다가 영생의 나라에 이른 사람들의 천국에서의 삶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들의 대열에 들어가 영생의 그 은혜와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약속하셨는데 그리스도의 섬김의 삶을 본받아 이웃의 눈물과 아픔을 보살피며 살았던 성도들이 그 영광의 나라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보배로운 삶을 누리고 있을까?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복을 누리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본문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유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섬기신 것처럼 우리의 삶이 섬김의 삶으로 꽃 핀다면 그 삶은 복으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