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9장에는 소경이었던 두 사람이 눈이 열린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던 소녀를 살리셨다는 소문을 들은 소경들이 ‘아니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 그럴 리가 있겠어? 헛소문 일게야!’ 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 예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사람은 결코 배부른 사람이 아닌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소경들의 눈이 그 즉시로 밝아졌습니다. 도대체 그 소경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대로 열매 맺게 되었을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믿음의 세계에서는 놀랍게 열매를 맺으니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눈이 밝아진 그 두 사람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소경이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전파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내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이었던 내 눈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이 밝아진 사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소리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소경이 눈을 뜬것보다도, 절름발이가 걷게 된 것 보다도,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영생이요, 영생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광과 찬송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유일한 근거와 절대적인 이유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십자가로 성취하신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할 수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 라고 찬양했던 것입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신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한 영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감사는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을 깨달은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세상 것에 늘 굶주려 있고 탐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감사가 터져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중에서 수시로 불평과 원망을 쏟아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광야 생활이 힘들기도 하였지만 그것보다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 낸 것입니다. 의심은 누구의 것입니까? 사단의 것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 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하시더냐”(창3:1) 사단은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도 교묘하게 이용하여 의심을 일으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2:16-17)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만 먹지 말라했는데 사단은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여 사람으로 의심이 들게 한 것입니다. 의심은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는 사단의 자식입니다. 혹 우리의 발걸음은 믿음보다 의심에 붙들려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3:19)
* 인생이라는 광야를 지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쏟아낼 만한 일들이 매일 매일 얼마나 많이 쏟아집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교회에서........ 일 때문에 건강 때문에 자녀 때문에 자신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과 원망에 정복당하지 않고 소망으로 일어서는 견고한 힘은 어디로부터 오늘 것입니까?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있기에 그 어떤 환경에도 굴복당하지 않고 정금보다도 더 귀하게 품고 있는 믿음으로 그 모든 환경을 용해시켜 버립니다. 구원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의 유일한 기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세상의 모든 파고를 감사로 변화 시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에 대한 믿음으로 확고하십니까? 그 복이 최고의 복이라 믿으십니까?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 적지 않은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 영생의 복을 죽음 뒤에 받는 선물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은 죽음 뒤에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땅의 삶, 육의 몸을 지닌 오늘의 삶에서도 누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우리 성도들의 삶이 아름답고 보배로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깨달은 구원의 은혜, 발견한 영생의 복으로 작은 것도 나누고, 미워할 것도 사랑하며, 절망할 일에는 오히려 찬송하고, 실패가운데서도 감사하며,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돌보기 때문 아닙니까? 실패가운데서도 칠전팔기로 또 다시 일어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보셨습니까?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형제의 눈물을 자신의 눈물로 여기고 위로로 돌보며 소망으로 가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셨습니까? 그 어떤 꽃이 이보다 아름다우며 그 어떤 보석이 이보다 보배롭습니까? 성도의 삶에 구원의 강이 흐르고 영생의 생수가 샘솟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을 발견하지 못한 삶은 어떻습니까? 욕심이 춤추는 사람, 탐욕이 들끓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 참 멋있네! 저 여자! 참 아름다워!’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미움과 시기심에 가득한 사람, 육체의 쾌락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고 ‘어쩌면 저렇게 보배로워! 어쩌면 저렇게 탐스러워!’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거부였던 스티브잡스가 어마어마한 재산을 뒤로 하고 묻힌 곳은 어디입니까? 스티브 잡스 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모든 거부들이나, 하나라도 더 얻겠다고 전쟁하듯 살아가는 세속의 사람들이 묻힐 곳은 어디입니까? 아쉽게도 한두 평도 되지 않는 땅속입니다. 엄청난 부자였을지라도 한두 평의 땅속으로,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을지라도 그 몸이 누울 만큼만 땅속으로 묻히게 되는 것이 우리 육체의 운명입니다. (현지인 교회 성도의 며느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남. 48세, 가로 세로 30cm의 공간에 묻힘)
* 그러나 육체의 죽음 뒤에 따르는 영혼의 운명은 전혀 다릅니다.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복을 발견한 가치대로 그리스도처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영광의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22:5) 하나님의 나라는 백 평 혹은 이 백 평 혹은 수 만평 되는 이 땅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바로 그 나라와 그 영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 어떤 업적을 쌓았던지, 그 어떤 부와 재물을 모았던지 상관없이 멸망에 처해져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됩니다. 육체의 운명에 목숨 걸고 살 것인가? 아니면 영혼의 운명에 목숨 걸고 살 것인가? 그것은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며 육체에 목숨을 걸고 살 것이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면 광야 같은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도 그의 삶에서는 언제나 감사와 찬미의 제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시107:21-22)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봄부터 이 시간까지의 삶이 어떠셨습니까? 태어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떠셨습니까? 풍성하게 소득을 하였든지 혹은 전혀 소득이 없었던지, 많은 이익을 남겼던지 혹은 손해가 가득했던지, 승리하였든지 혹은 실패하였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온 맘과 영을 다하여 감사로 찬양하며 노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가장 큰 보화, 예수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로 성취한 가장 큰 영광, 구원과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찬송을 다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십시오. 하박국의 찬송이 나의 찬송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하박국의 꿈과 비전이 나의 꿈과 비전이 되게 하십시오.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그 영광의 하나님을 꿈꾸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