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력으로 왕국주일이라 합니다. 이 절기는 1937년, 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에서 제정된 정통교회의 절기로서 하나님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주일입니다. 질문을 드려볼까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과 전혀 비교할 수도 없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의 나라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왜 꼭 사람이 되셔서 이 땅으로 오셨겠는가?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나라가 아니라면 왜 예수님께서 그 참혹한 십자가 죽음의 길로 오르셨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할 만큼 절대적 영광이요 필연적 역사로써 우리 사람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천국의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마13:44) 그래서 하나님나라로 초청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이고 오늘 천국의 삶을 살기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은 영광의 사람들입니다. 시편33편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 지난주일(2012년 11월 18일) 현지인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을 배웅하는데 한 성도가 제게 와서 말합니다. ‘제가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싶습니다.’ 성도들을 다 배웅하고서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주요 신문인 Népszabadság에서 잘나가던 기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6년 전에 뜻하지 않은 병이 찾아왔습니다.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의 증상은 몸이 경직되고, 근육이 떨리며, 느린 움직임, 부정확한 조준,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활동을 잘 개시하지 못함, 그리고 공간적인 혼미 등입니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병으로 인해 그는 잘나가던 일을 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 고 했지만 회사는 냉정했습니다. 6년의 고난의 세월을 지낸 지금은 많이 건강해져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일 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민하며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의 손은 차가웠습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저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그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큰 죄인입니다. 수많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이용했습니다. 내게 좋은 것이라면 그 일이 무슨 일이든 나는 기꺼이 그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제는 제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제가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제가 사람들로부터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바라며 이제는 제가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 하든지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셨음을 믿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권면했습니다. ‘당신의 눈은 다른 사람들의 눈보다 더욱 크고 깊게 확장되어 있습니다. 파킨슨병을 통과한 당신의 삶은 그 어떤 것보다도 보배입니다. 이제 하나님만 신뢰 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살고자하는 그 보배로운 삶에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회개하여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 그 삶은 이미 복의 삶이며 그 삶은 이미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장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 이 말씀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예수가 이천년 전에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쳤는데 왜 아직도 천국은 오지 않는가? 가짜 아니냐?’ 그러나 그것은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가까 왔다’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엥기켄(Engiken)입니다. 이 단어에 대해 대다수의 학자들은 현재 완료형으로 번역해야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번역해야할 것이 아닌 ‘천국이 도착했다. 하늘나라가 도착하였다. (The heavenly kindom has arrived)’ 라고 번역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도래할 나라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우리 앞에 놓여있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 일뿐만 아니라 오늘 이 땅의 삶의 자리에서도 살아갈 현재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천국의 삶을 이미 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천국을 살지 못한다면 죽은 뒤에 천국의 삶을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어찌 죽은 뒤에 거듭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그 영광스런 삶을 사는 길은 오직 우리 심령의 자세, 곧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심령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마18:1) 제자들의 생각의 방향이 이 땅이 아닌 천국에까지 이른 것은 대단한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영성은 아직도 육의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려는 절반의 변화였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가?” 하는 크고 작고, 높고 낮고, 있고 없고의 개념은 육체적인 것이지 결코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마저도 보이는 세상나라처럼 육체적인 것으로 접근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내가 큰 사람이 될 거야. 내가 그 높은 자리를 차지할거야.’ 이 땅에서 차지하지 못한 권세에 대한 탐욕과 명예에 대한 욕심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그들의 질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누구든지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사람이 천국에서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을 차지하려면 회개하여 어린아이같이 순수하여라.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여라.’ 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의 삶에 대한 모든 답은 어린 아이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권세에 대한 탐욕이 무너지고, 명예에 대한 욕심이 소멸되며, 높거나 많거나 크거나에 대한 생각조차 제거해버린 어린아이와 같은 그 삶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마음과 삶은 어떻습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합니까? 어린아이처럼 겸손합니까?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과 삶은 이 땅에서도 천국을 차지하는 보배입니다.
* 존 웨슬리목사님의 꿈 이야기입니다. 웨슬리목사님이 어느 날 천국에 올라가니 천사가 천국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천국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감리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천사는 천국에 들어온 사람들의 명부를 한참동안 뒤져 보더니 "웨슬리선생,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명도 없군요.” 웨슬리목사님은 천사의 그 대답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럼 장로교인은 몇 명이나 천국에 왔습니까?” 천사는 다시 명부를 훑어보며 대답했습니다. “장로교인도 없습니다.” 웨슬리는 매우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천사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천국에는 누가 온단 말입니까?” 천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천국에 온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형편을 세상에 비취어 보면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제법 학벌과 지식이 있는 것 같아도 세상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내게 ‘그래도 이만하면 됐어’ 하는 재산이 있어서 자족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부자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내 자녀가 세상에서 최고인 것 같아도 세상과 비교해 보면 잘난 아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가문도, 건강도, 직장도, 외모도, 재능도 세상에 내 놓으면 모두 다 초라해 보입니다. 세상은 우리로 끝없이 욕심 부리게 하는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며 결국은 생명을 잃습니다.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1:19)
*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내어 드리면 소망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창조자가 됩니다. 승리자가 됩니다. 꿈과 비전의 사람이 됩니다. 용기의 사람, 인내의 사람이 됩니다. 내가 비록 수만 번을 넘어졌을지라도 혹은 수천 번을 실수하고 실패했을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전히 동일하심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가치가 영원무궁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오늘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감사와 찬미로 기쁘게 살아야할 최고의 인증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은 미래적인 것과 동시에 현재적입니다. 여기에서도 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 믿음으로 사는 삶!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삶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최고의 인증서를 믿음으로 펼쳐 보이시기 바랍니다. 억눌렸던 마음은 강력한 새 의지로, 고난의 현장은 찬송의 자리로, 절망의 자리는 소망으로, 실패는 승리로 바뀔 것입니다.
*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천국 복음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천국 복음이란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죄악으로부터 돌이켜 회개하여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더 이상 죄로 인하여 제사할 것이 없는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가운데 오신 영광의 계획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영광된 승리의 능력이 강력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으로 세우신 삶의 모든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의 영광과 능력과 축복이 강수가 되어 흘러넘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