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에게는 혈통(Blood line)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유전자구조라 합니다. 조상으로부터 유전되어지는 특징이 무엇인가? 어떤 피가 그 가문에 흐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구조에 따라 어떤 가문에는 정치에 재능이 있고, 어떤 가문에는 탐험가의 기질이 가득합니다. 또 어떤 가문에는 예술가의 기질이 또 어떤 가문에는 사업가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음악이나 미술을 잘하고 싶은데 생각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방면에 유전인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멋진 사업가가 되고 싶은데 사업만 벌이면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에 대한 혈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의 유전자 속에는 그 조상으로부터 흐르는 유전의 형질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구분지어 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격과 학업, 직업과 삶의 특징을 결정하는 요인이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혈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피 속에는 어떤 유전자가 흐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아무리 좋은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어떤 뛰어난 DNA 구조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영혼 속에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지 않으면 그것은 모래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DNA구조 속에는 원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 지난 2012년 8월, 영국왕실의 해리왕자가 미국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에서 호텔 술집에서 일하는 낯선 여성들과 나체파티를 즐기던 사진이 인터넷에 퍼져 온 세상에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해리는 영국왕위계승 서열 3위로서 찰스왕세자의 둘째 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왕가의 교육을 받았고 최고의 엘리트교육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찌 이런 부끄러운 일들을 서슴지 않을까 말입니다. 로열패밀리의 혈통, 왕가의 혈통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왕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원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원죄의 피를 끊어 버리지 않는 그 삶에서는 육체가 쏟아내는 온갖 더러운 일들이 가득하게 됩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서의 최우선의 해결과제는 우리들의 혈통 속에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혈통이 되면 자신의 욕망을 쫒던 정치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정치가로 바뀝니다. 물질이 최고의 목적이었던 사업가는 하나님의 일을 확장해 가는 사업가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연주하던 음악가는 하나님을 찬양하기위한 음악가로 바뀝니다. 저주가 임했던 가문은 복의 가문으로, 가난했던 혈통은 부요함의 혈통으로, 실패를 거듭하던 가문은 승리하는 가문으로, 질병이 끊이지 않던 가문은 건강한 가문으로 바뀝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강림절을 맞이하는 이 계절에 구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내 영혼 속에 오셔야 유전인자가 바뀌고 새 날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가뭄은 비를 기다리고 파수군은 아침을 기다립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요의 때를 기다리고 실패한 사람은 성공의 때를 기다립니다. 병든 사람은 치유의 때를 기다리고, 낮은 사람은 높아질 때를 기다립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더 나은 복의 삶이 열리기를 소망하며 내일을 기다립니다. ‘내일은 좀 나아질 거야. 내일이면 해결될 거야’ 풍성하면 지금보다 더 멋지게 살 수 있고, 성공하면 지금보다 더 도우며 살 수 있고, 건강하면 지금보다 더 헌신하며 살 수 있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지금보다 더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일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막상 그토록 원하던 것을 손에 쥐어도 육체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더 나은 새 날을 갈망하고 또 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도들은 처해진 상황이 그 어떠하든지 간에 오늘이라는 시간과 환경 속에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갑니다. 성도에게서의 오늘은 언제나 최고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다림 중의 최고의 기다림이요 새날을 새날 되게 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삶속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것을 이미 받았음에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다면 그는 육체의 사람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설령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을 다 얻었을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를 통과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다림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갈망은 그리스도로 충만함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그리스도로 충만해진 삶은 세상의 모든 복을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깨끗이 비워진 그릇에 정성들여 만들어진 진귀한 음식이 담깁니다. 크고 넓게 비워진 그릇에 풍요롭고 풍성하게 담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을 담으려면 복을 담을 수 있는 삶으로 비워져야 합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삶이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복으로 충만해질 삶이란 그리스도로 충만해진 삶입니다.
* 기다림의 영성이 충만한 사람이란 주님이 오시길 마냥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다림의 열망처럼 믿음을 붙들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시지 않고 기다림의 삶을 사는 사람, 즉 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임재하십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세상 모든 사람은 새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는 새날이 결코 오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새날, 새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 오늘 본문은 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 있는 혈루 병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에게도 다른 여성들처럼 많은 꿈과 소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 건강한 삶, 복되고 사랑스러운 가정을 이루는 것, 평범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삶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병이 찾아왔습니다. 혈루 병입니다. 혈루 병은 하혈을 의미하는데 그 원인으로는 폐혈 증, 종양, 혹은 백혈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악성으로 바뀌면 암이 되는 병들입니다. 꿈 많던 여인은 혈루 병으로 인해 마음이 복잡해 졌습니다. 처음에는 곧 나을 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병은 점점 깊어 갔습니다. 병이 깊어지는 만큼 걱정과 시름도 깊어졌음은 당연합니다.
여인은 그 병에서 놓임 받기 위하여 많은 의원을 찾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여인의 병은 이미 12년의 시간을 뒤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있던 재산도 다 바닥이 났습니다. 12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그 시간만큼 낙심과 절망이 쌓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12년의 낙심과 절망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다른 한 편에선 여전히 치유에 대한 기다림과 새 삶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 병에서 언제나 놓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 제발 나를 치유해 주십시오.’ 병들기 전 설렘으로 품었던 꿈과 소원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혈루 병에서 놓임 받는 것이 유일의 꿈과 기다림이 되었습니다.
* 그런 그녀에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 소문은 여인에게 믿음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막5:28) 수십 년을 신앙생활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믿음이 없는데 여인은 어찌 이런 믿음으로 충만할 수 있었을까? 소문을 듣는다고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닌데 여인에게서는 어찌하여 소문이 믿음으로까지 확장되었을까? 기다림이 깊었기 때문 아닐까요? 사람의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전능자의 손길에 대한 열망이 깊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진정한 기다림은 믿음으로 확장됩니다.
* 여인은 이제 그 넘치는 믿음을 들고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 있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심령 안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만 이미 충만해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보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2년의 세월 속에서 연단되어졌어졌는데요.
본문 27절에서 말씀합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기다림의 실제인 믿음의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은 구원이요 치유였습니다. “이에 그 혈루 근원이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막5:28)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저의 기다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그토록 갈망하며 해결 받고 싶은 문제는 무엇입니까? 언제 구원받고, 언제 치유 받고, 언제 복을 받고, 언제 승리하는 새날이 오겠습니까? 혈루 병을 앓던 여인만큼 전능자의 손을 기다리며 갈망하십시오. 여인처럼 기다림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기다림의 열망만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행동으로 기다리는 바를 실천하십시오.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놓임 받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새날, 새 삶은 오직 그리스도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