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역에서 청년들에게 질문했다- 이 세상이 지금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겠는가?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배처럼?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이다.
❋ 본문 14-15절: 사라에게서 얻는 아들 이삭이 젓 뗀 날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인 날에 하갈에게서 얻는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고 희롱한 일로 아브라함의 집안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라가 폭발해서 아브라함을 몰아세웠다. “내 몸종 하갈에게서 얻은 이스마엘과 내 아들이삭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 이 종의 아들이 어찌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애굽으로 쫓아 보내라! - 이에 깊은 근심에 빠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메시지 하셨다. [창]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
❋ 본문의 말씀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근심의 정도가 얼마나 깊었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고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겠다.’ 약속 하셨겠는가? 그러나 마음속 깊이 들어 붙은 정을 어찌 뗄 수 있겠는가?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아 15년 이상 얼마나 기뻐하고 사랑하며 축복했겠는가? 그런데 하루아침에 내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은 두말없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절대적 순종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향하던 정과 근심과 걱정을 뒤로하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진면모를 보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받아들였다. 정을 꺾기 어려워도 끊어버렸다. 문제는 이것이다. 약속 안에 거하겠는가? 아니면 육체를 품고 살겠는가?
❋ 물론 당대 부자였던 아브라함이 떡과 물 한가죽부대만 주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풍부한 재산을 주었을지라도 아브라함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서로 눈물이 글썽거리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사춘기를 겪고 있을 이스마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또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눈은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된다. - 순종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명하심에 내 뜻을 꺾는 것이다. 순종이 무엇인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고난의 길일지라도 고난을 찬송으로 바꾸어 주시고, 지금은 비록 눈물이 나는 길일지라도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하나님을 믿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다. 믿는다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행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눅]9: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본문 15절: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순식간에 포커스의 장면이 바뀌었다. 정든 집으로부터 떠밀려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방향을 잃었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거쳐 메소포타미아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인데 사막지역이다. - 생각해보자. 사막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머니와 아들! 그런데 그 사막의 더위를 견딜 물이 다 떨어졌다면 그들의 생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이스마엘은 부유한 족장의 사랑받던 아들로서 고이고이 자랐을 텐데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아이가 더위가운데 죽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 속에 있는 가장 비극적인 일들 중에 한 장면이다. -
과연 누가 이 참담한 죽음 앞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되겠는가? 오늘 여러분 앞에는 사막한 가운데서 길을 잃은 것 같고, 물까지 다 떨어져 버린 것 같은 아니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없는 문제들은 없는가? 과연 그 문제들을 해결해줄 구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광야인생길에서 나의 구원과 능력과 승리는 누구인가?
❋ [시]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본문: 16-18절: [창]21: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창]21: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 더위에 목이 말라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도무지 곁에서 볼 수 없어 화살 한바탕 곧 화살을 쏘기에 적당한 200-300m 거리를 두고서 목 놓아 울고 있는 한 여인- 이 비극적인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얼마나 고통하며 울었을까? 죽음의 순간을 목도해가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가슴은 통증으로 인해 마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바로그때 하늘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하갈아!” - 하나님의 사자의 음성이었다.
1)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2)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3)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4)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구원이라! 하늘에서 내려진 구원이라!
❋ 죽음이 한 생명을 삼키려는 그 절대절망의 자리에 친히 찾아오신 참으로 놀랍고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요 약속이다. 죽음이 제거되고 새 생명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 그 광야 한 가운데서 펼쳐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이라는 삶을 살면서 목 놓아 울어 본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찢어지는 가슴을 붙들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서부역에서 찬양하며 절로 기도하게 된 이 시대) - 물 한 방울 얻을 수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기도로서 울면, 눈물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응답하신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세계이다. ❋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17절: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What is the matter, Hagar? Do not be afraid; God has heard the boy crying as he lies there. 하나님께서 목말라 죽어가는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이스마엘의 이름의 뜻을 아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다’ 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광야에서 죽어가는 한 아이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들으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스마엘은 언약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절규를 들으셨다. 육체의 사람의 음성까지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언약 밖의 사람의 그 절규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성도들의 음성에는 어떠하실까? 눈물의 기도에는 얼마나 더욱 깊이 들으시겠는가?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어렵다 말하지 말자 하늘 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 본문 19-21절 [창]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창]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로 상황이 급변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심으로 샘물을 발견하게 되어 아들도 어머니도 다 같이 소생하게 된 것이다. 은총의 샘물이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며 그토록 찾아도 보이지 않던 샘물이 소리 내어 울며 하나님께 울부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샘물을 보도록 눈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 우리는 눈이 있으나 앞을 보질 못하는 맹인이다. 그래서 수도 없이 세상이 놓은 올무에 걸려 넘어진다. 맹인이어서 아무리 쌓고 쌓아도,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여전히 그 목마른 그 길을 향해 나간다. 과연 누가 우리의 눈을 밝혀 숨겨진 샘물을 발견하게 하겠는가? 과연 누가 우리를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목마름 없이 살도록 돕겠는가?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축복한다. 그리하여 생수샘물의 길로만 다니며 영생에 이르는 복된 길로만 다니게 하시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