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과 부활체: 부활이 없다고? 그럼 우리가 이 복숭아 씨앗보다 못한 존재인가?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 본문 23-28절: 틈만 나면 예수님을 올무에 걸어 넘어뜨리고자 했던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그날엔 세금문제를 가지고 덤벼들었다.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한다고 하면 매국노로 몰려했고, 세금을 내면 안 된다고 하면 정치범으로 몰려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실제적이고 영적인 답으로 어리석음을 내리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세상 사람들은 세상일을 하다가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삶을 드리다가 예비 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 안으로 들어간다. 너희들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고 있는가? -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 내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 바리새인들의 교묘한 올무걸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같은 날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등장했다.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그들의 올무걸기의 근거는 신명기 25장 5-6절의 말씀이었다. [신]25:5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신]25: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한 가족 중에 칠형제가 있었다. 맏이가 장가들었는데 상속자를 얻지 못하고 죽음으로 들어갔다. 상속자가 없음으로 둘째가 형의 아내를 물려받았는데 그도 역시 상속자가 없이 죽어 셋째가 그 아내를 물려받았고 그렇게 일곱 형제가 한 아내를 다 물려받고 상속자가 없이 다 죽었다. 최후에는 그 여자까지 다 죽게 되었다. 그렇다면 부활의 때에 그 여자는 그 일곱 형제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된통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문제로 예수님을 무너뜨리고, 바리새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나타내고자 마련한 올무걸기였다.
❋ 왜 그들은 그렇게도 끊임없이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을까? 예수님의 무엇이 그들에게 장애가 되었을까? 그렇다. 바로 진리의 차이였다. 예수 안에 참 진리가 있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들의 거짓이 들통날까봐!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치고, 외적인 모습은 거룩해 보였으나 정작 삶에서는 독사의 자식 같은 것들이 가득한 그 실체가 들통날까봐! 광명과 어두움이 비교되듯이, 알맹이와 쭉정이가 비교되듯이.........지금 이 시간에도 어둠의 영들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그들이 무장한 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뿐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 동성애와 젠더, 인권과 성차별의 올무를 들고 달려든다. - 예수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깨어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말씀으로 살아있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 이기는 자가 되라!
❋ 사두개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사두개인들은 다윗시대에 제사장직무를 행하던 사독가문의 후손들이라고 여기는데 본문 첫 문장과 사도행전 23장에서 밝히듯이 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몸의 부활을 증명하고 인정하려는 바리새인들과 늘 대척점에서서 논쟁을 일삼았다. 그들 대부분은 제사장직을 맡고 있는 귀족계급이었고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가 실체라고 믿었다. 철저히 현세주의 적이고 세상중심적인 사람들이었다. - 그러한 눈으로 성경을 읽고 제사장 역할을 했으니 과연 그 시대가 어떠했겠는가? 그러니 예수님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 달려든 것이다. - 목회자가 세속의 영성으로 말씀을 대하고 가르친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마저 어두우면 누가 세상을 빛의 길로 인도하겠는가? - 손에 쥔 것이 마지막 날에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 그러나 손에 쥔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된다. - 하나님의 복음, 예수사랑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길 축복!
❋ 본문[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사두개인들이 와서 동일한 문제를 던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일곱 형제의 모두의 아내였던 여인이 부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 오늘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던진 질문은 영적인 것인가? 육적인 것인가? -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는 자들이라고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사고는 철저히 세속적이었기에 그들이 던진 문제역시 너무도 세상적인 것이었다.
❋ 사두개인들의 반응: 한 번 생각해 보자. 사두개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하고 성경에 대하여 깊이 알고 있으며 제사장으로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책망을 들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 그러나 반대였다.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을 황당하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부활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광으로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라는 말씀 안에는 모든 일에 전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으니 말이다. -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내가 있다!!!
❋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만 유지되는 결혼제도를 육체의 모든 즐거움과 갈망과 쾌락과 탐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진 부활의 몸을 입게 될 하늘의 사람들에게까지 연장하려 하고 있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오해하였도다.” 라고 질타하신 것이다. “오해 하였도다” 에 해당하는 원어는 ‘플라나스데’ 인데 이것의 의미는 '너희가 너희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기만하고 있다' 는 뜻이다. - 자신들의 세상영광을 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꺾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타락한 영성을 가지고 어찌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깨닫고 수행 할 수 있겠는가?
❋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들 가운데 세속에 물들지 않은 거룩한 영성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해하며 사역하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 성령 충만 하자!
❋[마]22: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하시니[마]22: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 예수님께서 출애굽기3: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무지를 깨뜨리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시제로 말씀하셨다. -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인용하며 아주 중요한 두 가지의 복음 진리를 메시지 하신다. 그 첫째는, 하나님은 언약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언약은 현재도 살아있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나와 여러분도 현재적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속에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죽은 자가 아닌 영원히 살아있는 자로 부활시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아브라함이 죽어서 잊혀 졌는가? 다윗은? 바울은?- 그들의 믿음은 어떠했는가? 산자의 믿음이었다.........그러니까 무리들이 이 진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이제 사두개인들을 넘어서서 예수님 앞에 현재적으로 서 있는 우리가 받아야 할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1) 나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다. 그러하기에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 (하나님 외에 더 사랑하는 것을 금하라. 세속을 따르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2) 둘째는 죽어도 결코 죽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을 사람다움의 믿음으로 살라! (세마포의 흰옷- 복음대로 사는 행실이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 부활의 몸을 입고 영생영광을 누릴 산자의 믿음이 되기를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