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 사람의 패망의 슬픈 이야기: 마태복음 26장 14-16절: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스스로 대제사장들을 찾아간 가룟유다. 그 반역의 길을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역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겨우 은 삼십! 일천 이백여 만원…..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자손손 물려줄 재물 이라 해도 함부로 행동 할 수 없었을 텐데 가룟 유다는 마지막까지 그 길을 갑니다. 그는 왜 그랬을까요?
가룟유다 만큼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예수님에 대한 지식, 정보, 경험을 논술시험을 치르게 했더라면 아마도 그는 최고점수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지 못했을까? 왜 그는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지를 못했을까?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경험은 결코 그에게 참 신앙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모든 지식과 경험을 넘어서서 예수님의 실체 안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주위만 빙빙 돌은 결과 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실로 예수님을 앎과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나의 그리스도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마음이 둔한 자가 아닌 마음이 성령으로 밝은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요 나의 하나님으로 확신하며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본문 1-2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기초가 되는 회개란 무엇이며 세례와 안수는 무엇이며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은 무엇입니까? 에 대한 지식에서 정보에서 그리고 경험에서만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회개함을 배워 회개했다면 그 위에 새 삶을 건축하기 위해 땀 흘리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진리를 배웠습니까?
그렇다면 배운 것으로 그치지 말고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 내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거칠게 덤벼들어도 결탁하지 말고 매일의 삶에서 십자가로 죽고 십자가로 다시 사는 부활의 삶이 되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와 경험이 신앙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이 시간 엄밀한 영적 진단을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교회와 그 역사에 대한 수많은 지식과 정보와 경험의 일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TV, 인터넷만 켜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교회들에서는 매주일 성경공부로 얼마나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 배운 만큼 성도가 성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 지식 안에 머물러 있고 다 경험 안에 갇혀있습니다. 성경 66권에 대한 지식을 알면 무슨 소용입니까? 예언 방언 환상 입신 기적체험 기도체험을 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 마음 안에 예수가 없고 그 삶으로부터 예수가 쏟아지지 않는데.
4. 배운 만큼 신앙이 높아지고 체험한 만큼 삶이 하늘이 되어야 그가 참 하나님의 사람, 참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가복음 7장 6절)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전도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여 주여!는 하는데 그 주님에 합당한 삶이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세상보다 더욱 교묘하고, 세상보다 더 사치 향락하니 전도의 문이 닫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Therefore let us leave the elementary teachings"
여러분! 오늘 우리는 믿음의 기초가 되는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통과한 성숙한 신앙, 장성한 신앙인 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성경에 대한 지식에만 머물러 있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입니까?
5. 이제 본문 7-8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두절의 말씀은 서로 대비되고 상반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첫째의 땅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비를 그대로 흡수하는 땅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수고하고 땀 흘린 바를 그대로 열매 맺는 복스러운 땅이 되었습니다.풍성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가득히 결실한 복스러운 땅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일 년 내내 온갖 고생하며 힘들었던 모든 것이 풍성한 수확으로 다 보상받는 시간이 됩니다.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땅이 존재하는 이유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소산을 가득히 결실하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생명 생수와 같은 말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단비와 같은 예수말씀을 먹고 마시고 주님을 결실하는 삶이 될 때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사과 같고 복숭아 같고 수박 같고 참외 같고 오렌지 같은 사랑의 말씀을 열매 맺고, 희락의 말씀을 열매 맺고, 화평의 말씀의 맛을 내는 성도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사명은 믿음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서 주님을 열매 맺는 삶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저는 여기에 모인 모든 분이 본문7절의 말씀을 성취하는 복 가운데 거하기를 축복합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7. 본문에서 가르치는 두 번째의 땅은 하늘의 단비를 거부하는 땅입니다. 때론 단비를 받기는 하는데 깊이깊이 받지를 않습니다. 표면에만 살짝 받습니다. 그래서 탐스럽고 복스러운 곡식대신 아무 쓸모도 없는 가시와 엉겅퀴만 가득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인의 마음은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땅이 그 소산을 결실하지 못해서입니다. 성도가 성도답지를 못해서!!! 한국교회여!!!! 그래서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다 거두어다가 불에 던져 버립니다. 땅만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단지 언제 태어나서 언제 돌아갔다 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심판으로 결말을 짓게 됩니다. 열매 맺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과 그렇지 못한 삶!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들녘은 어떠합니까?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있는 들녘입니까? 아니면 아무 쓸데 없는 것들로 가득한 들녘입니까? 엉겅퀴 탐욕, 거짓, 사치! 가시덤불 미움, 시기, 다툼,인색………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누가복음3:17절) 알곡!!!!
심판의 날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서의 심판의 날은 소망의 날이요 잔치하는 날입니다.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억지로 살고자 함이 아니라 진실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살아내는 삶이라면 그는 반드시 알곡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거할 곳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입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갈 지니라.”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인 회개와 세례와 심판과 부활 및 온갖 율법의 논리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열매 맺는 장성한 성도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