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가장 급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10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로의 입성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어떨까?
요한계시록 21:21-23절에서 증언합니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그렇습니다. 그곳 영생의 나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곧 성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성전 되신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빛이 충만하기 때문이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천국을 밝히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은 모든 것이 회복된 곳일 뿐만 아니라 완전한 새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이어지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는 눈물과 한숨, 고난과 절망, 실패와 고통이 연속되지만 그곳은 오직 기쁨이요, 오직 평화요, 오직 찬양과 감사로 충만한 곳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 되리라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2.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죄가 영원이 사라진 곳! 그래서 죄의 삯들이 틈탈 수 없는 곳! 회복된 에덴동산의 새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와 복이요 영광입니까? 그러나 그 은혜와 영광의 나라가 성도인 우리에게 유산으로 상속되는 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값!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 값이란?
모든 인류의 죄악에 대한 완전한 희생제물입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으로 완전한 희생제물이 가능할까?
10절 하반절과 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진실로 그렇습니다. 모든 만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예수님의 낮아지심이요 고난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어주신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고통이요 죽으심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스스로 계시는 분! 만유의 창조주이시요 통치자이신 주님께서 어찌 이렇게까지 낮아지시며 게다가 처절한 죽음까지 당하신다는 말입니까? 그러니 우리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6.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더 깊은 확증 받아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레위기 16장에는 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 행하여야 할 규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규례가 있는데 그 중에는 모든 이스라엘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에 대한 규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죄악뿐만 아니라 백성의 모든 죄악도 씻김 받도록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 규례의 일부분을 보겠습니다.
레위기 16장 7-10절의 말씀입니다.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7. 그렇습니다. 아론은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로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마리의 염소를 놓고 제비를 뽑습니다. 그 중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라고 써진 속죄 제물로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라고 써진 속죄 제물로 드려집니다.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라고 써진 것에 제비 뽑힌 염소는 하나님 제단에 드려져 도살을 당합니다.
모든 백성의 죄를 지고 염소가 대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은 ‘아사셀을 위하여’ 라고 써진 제비에 뽑힌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어 안수를 합니다. 안수를 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낱낱이 그 염소에게 전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의 죄를 이 염소에게 전가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방탕과 교만, 불의와 불법, 거짓과 탐욕, 우상숭배와 망령된 모든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안수가 끝나면 아론은 준비해둔 사람들을 통하여 이 염소를 광야의 끝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광야는 단순한 들판이 아닙니다. 한번 나아가면 두 번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곳이요 접근하기 어려운 땅입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땅이란 과연 어디일까? 그것은 깊은 절벽, 깎아지는 낭떠러지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기록에 의하면 염소를 이끌고 갔던 사람들은 낭떠러지에 이르면 그 염소를 산채로 밀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갖 죄악을 한 몸에 지고서 깊은 절벽으로 떨어진 염소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 형체가 과연 남아 있었을까?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있었을까? 바위에 나무에 이리저리 다 깨지고 부서지고 모든 것이 다 산산 조각나지 않았을까요?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함께!!!
8.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지고서 십자가 그 누구도 오를 수 없는 외길로 나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시고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땅, 십자가 죽음의 참혹한 외길, 골고다의 낭떠러지에서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의 그 참혹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바로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자유 하게 하는 능력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영광이 된 것입니다.
본문 15-17절의 말씀입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없으면 다시 살아남이 없기에 주님께서 그 길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의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여러분 됨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죽음 안에서 오늘을 살아내야 할 여러분의 삶을 보시기 바랍니다.
9. 이제 본문 18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절대적이시오 영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 이스라엘이 된 우리성도들을 향한 사랑은 장차올 세상 영생의 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라는 이 세상의 시험과 환난이 넘쳐나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도 그 사랑의 능력은 실제적임을 다시금 알려주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겪지 않은 시험이 당하지 않는 고난이 어디 있었습니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당하신 것뿐만 아니라 십자가죽음이라는 최후의 고통까지 다 당하셨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시험과 고난을 부활로써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예수님의 모든 성취의 능력이 바로 그의 것이 됩니다. ‘눈물은 기쁨이 되고 절망은 소망이 됩니다. 고난은 연단이 되고 실패는 승리가 됩니다. 어두움은 광명이 되고 가난은 부유함이 됩니다. 낙심은 위로가 되고 죽음은 생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그 모든 것을 당신의 몸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으심,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시험과 어려움, 어떤 고난과 고통, 어떤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다시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며 오직주님을 더욱 사랑하십시오. 세상만물의 처음과 시작은 지금도 여전이 예수그리스도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실로 저와 여러분을 성취하시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