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오십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다닌 야생사슴: 누가 이들을 이렇게 탐스럽고 윤기 나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다듬으시고 돌보시는가? 하나님의 섬김의 손이 그들을 돌보신다. 온 세상은 지금도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를 따라 각자의 빛과 자취와 모양과 향기를 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만물을 돌보시느라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3-4절)/
모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을 물리쳐라. 우리가 근심하고 염려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해야 더욱 주님의 주님 되심을 알까?’ 하는 영의 갈망이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주님을 더욱 섬겨드릴 수 있을까?’ 하는 성숙한 신앙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섬김의 극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나타내셨다. 십자가의 하나님을 앎이 믿음이 되고 믿음의 크기와 정도가 삶의 크기와 정도가 된다. 하나님을 발견했는가?
2. 본문 24절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제자들은 주님과의 마지막 만찬을 하면서도 세속의 경쟁을 한다. ‘누가 크냐? -내가 너희들보다 더 높아! 주님 돌아가시면 내가 그 뒤를 이을 거야!!!’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세상적 왕국에 대한 탐욕이 가득했다. 그러니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도 세속경쟁으로 불이 튄다. “다툼” 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가진 의미가 놀랍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논쟁 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
그러나 최후의 만찬 후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가? 이렇게 정신없는 사람들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성도는 누가 크냐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사랑이어야 하는가? 누가 더 열심이어야 하는가? 누가 더 낮아짐이어야 하는가?’ 하는 영적 싸움을 일구어가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절)
3. 본문 25-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세속의 틀은 임금이 높은 자이고 많이 가진 자가 다스리는 자이다. 그러나 세속의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다스리는 통치의 방식은 철저히 육체의 영광과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세상은 지금도 온갖 술수를 통해 탐욕의 전쟁을 일으키며 자리쟁탈전을 벌인다. ‘높아져야 해! 섬김 받아야 해. 내 것 삼아야 해!’/ 그러나 사람들이 온갖 술수를 다 부려 남들보다 높아지고 커져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한진 그룹일가의 만행, 판검사의 들의 성 상납. 사단의 앞잡이들이 된다. / 과연 그들은 죽음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4. 예수님께서는 큰 자와 작은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의 틀을 바꾸어 놓으셨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
너희는 세상방식을 따르지 말아라. 작은 자가 큰 자이다. 섬기는 자가 다스리는 자이고 낮은 자가 높은 자이다. 세상의 방식과는 반대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생명의 양식인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섬기심으로 온 세상은 생명으로 충만한 것처럼 우리성도도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섬김이 되어야 한다. 생명이 충만을 이루게 된다. /
[롬]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육체영광 아닌 영의 영광, 세상이 아닌 하늘을 상속받아야 한다. 세상은 잠깐이고 하늘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가질래? 눈에 보이는 것?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5. 본문 27절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오늘 우리교회에 이 말씀과 같은 세상에서의 통치방식이 판친다면 어떻게 될까? 섬기는 자가 없고 앉아서 먹는 자만 가득하다면? 그러나 나는 감사한다.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여러 모양으로 잘 섬김을. (바리새인들의 교만: 하나님의 섬김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십일조 드려서 부모님께 드릴 것이 없다 하며 부모를 섬기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십일조도 하고 부모도 섬겨라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6.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사는 성도라면 섬김의 영성과 삶은 너무도 당연한 책무이다.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이요 삶으로 보여주신 명령이다. 섬김의 사람은 주님의 길을 따르는 거룩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 되는 보배의 사람이다. /
♬그런즉 이제는 나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주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런즉 이제는 나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주께서 사시는 것이라 나의 삶은 내 주 예수의 것이니 내 생명 다해 예수로 살리 내 모든 것 내 주 예수의 것이니 내 전부 되신 예수로 살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절)/
7. 본문: 28-30절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강은 거대하다. 강이 지나는 곳은 사람도 풍성하게 하고 동물도 살찌운다. 뿐만 아니라 온갖 초목이 계절을 따라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물의 시작은 아주 작은 샘물로부터 시작된다. 섬김의 샘을 삶에서 터뜨려야 산다. 샘은 터뜨리지 않으면 마르고 만다. 섬김의 샘을 터뜨려 흐르게 할 때 가정도 살고 직장도 살고 교회공동체도 살아 큰 강과 같은 역사를 이루어간다. 성도로 부르신 이유는 주님의 삶을 살라 하심이다.
8. 그러나 섬김의 신앙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진다.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이다. 이 약속이 소망이 되고 소망이 오늘을 섬김으로 사는 능력이 된다. 섬김의 삶이 아니라면 그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에게 가장 크고 가장 영광된 복이 기다리고 있다.
‘하늘식탁은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하늘식탁에 깔린 식탁보는 어떤 모양으로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하늘식탁에는 어떠한 것들이 차려지게 될까? 하늘식탁에서는 누가 시중을 들까?’/ 우리 모두 주님의 자리에 참예하여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 받는 은혜를 누리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